입맛대로 읽어내는 ‘소시오패스와 로봇 학대’
입맛대로 읽어내는 ‘소시오패스와 로봇 학대’
  •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블로그 운영자
  • 승인 2021.11.10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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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온 한 야당 후보의 부인이 여당의 대통령 후보를 ‘소시오패스’라 하여 논란이 일었다. 뒤이어 아무개 교수는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2021 로봇월드’에서 이재명 후보가 4족 로봇을 굴려 넘어뜨렸다며 ‘기본적으로 감정이입 능력의 문제’라며 그의 인간성을 운운하여 화제가 되었다. 한 사람은 정신과 의사이고, 다른 한 사람은 진보 지식인라는 점에서 큰 관심거리였다.

이렇듯 세상 보는 눈은 사람마다 다름을 잘 보여준다. 각기 살아온 과정과 체험이 같지 않으므로 어떤 현상을 다르게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말하는 방식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하였다. 즉, 화자의 모든 말은 자신의 존재성에 바탕을 둔다는 점에서 우리는 화자의 상식을 헤아리기도 한다. 자크 테리다는 이런 상황에서 ‘텍스트의 바깥은 없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논란을 일으킨 사람이 보통의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전문가적 소견’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을 듣다 보면 그것은 그들의 전문성과는 무관한 궤변이라는 말이 더 설득력이 있다. ‘소시오패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하나로 사회적 규범에 공감하지 못하며 자신의 이득에 따라 타인의 권리를 무시하고 침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자신의 잘못된 행동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를 지닌 정신질환자(psychopathy) 또는 사회병질자(sociopathy)로 불리기도 한다. 정말 그가 그런 사람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이 말은 언론에서 더 많은 논란을 일으켰다.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녀의 남편 행위는 더 큰 논란을 일으켰다. 상대 패널에게 다그치는 발어을 했고, 방송국이라는 공공장소에서 큰소리치며 화내는 모습을 보였다. 하이데거가 지적한 그의 ’존재의 바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마도 그 장면을 지켜본 시청자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들이 지적하고 비판했던 ’소시오패스‘의 모습이 그의 존재 내부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았다. 차세대 주자로 신망 받던 그가 왜 그렇게 구겨졌을까. 부인이 대통령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라며 어부인 감싸기에 급급한 모습은 정치가가 보여줄 모습은 아니었다. 설사 환자를 직접 진료하여 그런 결과가 나왔다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이야기 아닌가. 의사의 직업윤리마저 망각해 버렸다는 비난에 대하여 우리는 뭐라고 답해야 할까.

그리고 로봇의 회복탄력성을 시험하기 위하여 주최 측에서 시킨 대로 ’4족 로봇’을 넘어뜨린 장면을 보고 아무개 교수는 특유의 필력으로 ’감정이입의 문제’라며 비난했다. 언론에서는 로봇이 다시 일어서는 장면은 삭제하고, 로봇을 넘어뜨리는 장면만 부각하면서 그 상황과 분위기를 왜곡시켜 버렸다. 많은 팔로워를 가진 아무개의 한마디는 큰 영향을 미친다는 면에서 이것 또한 신중치 못한 표현이었다.

아마도 그 대상이 유명 인사가 아니라면 뉴스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곱지 않은 눈으로 보다가 이것이 덜컥 걸리고 만 것이다. 설사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그런 식으로 덧씌우는 것은 지식인이 할 일이 아니다. 사실 우리의 지성계는 어느 순간부터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내 편에서 하면 모두가 로맨스이고, 상대편에서 하면 불륜이 되고 만다. 객관적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는 점을 망각해 버렸다

이런 일이 지도층 인사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이 사회의 불신 풍조와 상대를 비하하는 고질적인 악습에 기인한 것은 아닐까. 모든 행위에 대한 해석은 관찰자의 자유일 테지만, 그것이 떳떳하고 온당한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런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아무리 각박한 세상에 산다 해도, 우리가 쓰는 말에 일일이 가시를 박아놓아야 할까. 젊은 패기의 당 대표는 ’실체를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강조하면서 ’가면을 찢어 주겠다‘라며 악담을 퍼부었다. 아무리 생존게임의 정치판이라고 하지만 품격 없는 언어를 함부로 쓰는 것은 문제다. 오죽이나 듣기 거북했으면 MBN의 앵커는 한 패널에게 그런 말을 쓰지 않도록 전달해 달라는 이야기를 했을까.

이런 식의 말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지식인이 말은 아니다. 자기편에게는 온유하고 부드러운 수사(修辭)를 쏟아놓고, 다른 편에게는 칼날 같은 저주를 쏟아낸다. 언론은 . 그런 말을 되풀이하면서 논란을 확산시킨다. 세상이 복잡하고 힘들수록 말이라도 정겹게 해야 하는데, 말까지 거칠어서야 되겠는가. 말로 상한 기분은 쉽게 되돌려지지 않는다. 지식인일수록 말을 더 신중하게 했으면 한다.

 

송일섭 염우구박인문학교실 블로그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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