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에 혼자 걷는 길은 없다
삶의 길에 혼자 걷는 길은 없다
  • 서정환 수필가
  • 승인 2021.10.20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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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삶은 자주 위협적이고 도전적이어서 우리의 통제능력을 벗어난 상황들이 펼쳐진다. 그때 우리는 구석에 몰린 소처럼 두렵고 무력해진다. 그럴 때마다 자신만의 영역으로 물러나 호흡을 고르고, 마음을 추스르고, 살아갈 힘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숨을 고르는 일은 곧 마음을 고르는 일이다.

삶의 길에 혼자 걷는 길은 없다. 당신이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여행을 하든 과거에 그 길을 걸었던 모든 사람, 현재 걷고 있는 모든 사람이 정신적으로 연결되어 당신과 함께한다. 당신은 그 모두와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같은 파동끼리 연결되기 때문이다.

나 이전에 그 길을 여행한 모든 존재들이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여행한다. 나는 마음을 열고 그들의 안내에 따른다. 그러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길이 열렸다. 그때 나는 더 강하고, 동시에 더없이 수용적이 된다. 거부하고 고립될 때 우리는 약해진다. 나는 의식을 넓혀 미래에 이 장소를 여행할 존재들을 지금 나와 함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고 상상하곤 한다. ‘혼자’라고 여기면 눈에 보이지 않는 협력자들과의 교류가 차단되었다.

자신이 분리된 존재라고 믿는 것은 실제로는 우리의 고정된 생각과 관념, 제한적인 지각작용이 만들어 내는 현상일 뿐이다.

시인 에밀리 디킨슨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애허스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시를 쓰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지 않고 평생을 집에 은둔했다. 작품을 거의 발표하지도 않는 비사회적인 시골 여성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를 쓸 때마다 자신이 세상의 모든 시인들과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시인들을 ‘영혼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 혹은 ‘책꽂이에 있는 동족’이라 여겼다. 따라서 시를 쓸 때 그녀는 전혀 고독하지 않았다. 사후에 시가 발견되어 그녀는 19세기 최고의 시인으로 자리 잡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오로지 목적지 도착에만 열중해 있으면 주위의 아름다운 풍경을 음미할 마음의 여유가 없게 된다. 자연이 선사하는 꽃과 새소리와 향기는 우리들의 오감 속에 스며들 겨를이 없어진다. 밀림 속 오솔길은 자주 끊겨 넝쿨들을 자르며 길을 내지 않으면 안되었다. 몸에 달라붙는 벌레들도 수시로 떼어 내야만 하고, 발이 미끄러지는 진흙탕과 오르막길도 가야 했다. 해가 남아 있을 때 목적지에 도착할지도 미지수였고, 미지의 환경에서 느껴지는 불안감도 컸다.

그러나 코벳은 야생의 정글이 주는 경이로움과 신비만으로도 모든 고난을 충분히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스쳐가는 풍경을 즐기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야영지에 도착해 있었다. 동일한 무게의 배낭을 지고 같은 길을 함께 걸은 사람이 느끼는 짐의 무게와 고난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 자신도 목표 지점과 결과를 향해 가느라 삶이 그 여정에서 선물하는 것들을 지나치기 일쑤이다. 삶은 그 여정들로 이루어지는 것인데도 말이다. 한 사람은 도중의 난관들을 피해 서둘러 목적지에 도착하느라 마음이 급하지만, 또 한 사람은 과정에서 발견하는 신비와 뜻밖의 경험들에서 순수한 기쁨을 얻는다. 그에게 삶은 놓칠 수 없는 소중한 선물이며, 목적지는 오히려 그 과정들을 경험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설정한 지점에 불과하다. 목적지에 이르면 또 다른 목적지로 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과정과 순간순간이 목적지’라는 말은 트레킹뿐 아니라 삶에 있어서도 진리이다. 사실 전 세계의 산과 정글 속에서 행해지는 트레킹의 진정한 의미는 목표지점에 서둘러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여정의 매 순간을 즐기고 감동했는가’에 있다. 그 즐거움과 감동이 고난을 불사른다. 순간순간을 즐기면 발걸음도 가볍고 자연스럽게 목적지로 나아간다. 그 기쁨이 신비하게도 나침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때 나아가는 길이 더 명확해진다.

모든 여행에서 중요한 것은 여행의 내용이다. 어느 지점에 도달했는가보다 어떻게 그곳까지 갔는가, 얼마나 많이 그 순간에 존재했는가가 여행의 질을 결정한다. 우리는 여행자이면서 동시에 여행 그 자체이다.

이 이야기를 하며 짐 코벳은 책에 썼다.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있는 것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 시인이 될 수 없다면 시가 되라는 말이 있다. 우리는 때때로 삶의 밀림을 통과해야 하며, 맹수 사냥꾼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삶의 향기는 언제 목적지에 도착하는가와 관계없이, 우리가 걸어가는 길 중간중간에 피어 있는 들꽃 같은 얼굴들과 매 순간의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앞만 보고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담벼락에 핀 꽃을 보는 마음의 여유와 관심, 그곳에서 기쁨을 발견하는 쉬어감이 그 여정을 풍요롭게 만든다.

정신없이 바쁜 삶 중에도 한번 되새겨 봐야 하지 않을까.

서정환<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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