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딸나무
산딸나무
  • 박성욱 수남초 교감
  • 승인 2021.10.2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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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에 익어가는 열매들

 어릴 적 가을을 참 많이 기다렸다. 먹을 것이 많아서다. 집 앞에는 단감, 옆에는 대봉, 납작감, 대추 등 가을 햇살을 받아 주황색, 빨간색으로 익어갔다. 동네 친구 집에는 주먹만 한 돌배가 노랗게 익어갔다. 아침에 이슬 맞은 대추를 한 개 따서 작게 한 입 베어 물면 시원하고 달짝지근한 맛이 입안에 확 번졌다. 감나무 꼭대기에 달린 가장 잘 빨갛게 익어가는 감을 바라보면서 언제나 따서 맛있게 먹을까 설렘이 계속되는 날들이었다. 친구들과 하굣길에 길옆 큰 밤나무에서 떨어지는 밤을 주머니 가득 빵빵하게 주었다. 높이 달린 튼실한 밤을 보면 주변에 짱돌 하나 집어 들고 밤송이를 향해 던졌다. 운이 좋으면 한 방에 톡 맞혀 따고 그날따라 실력 발휘가 안 되면 어깨가 축져서 머리 속으로 온통 그 밤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던 날들이 있었다. 하지만 혼자 따는 재미보다 같이 따는 재미가 좋고 혼자 먹는 열매보다 같이 먹는 열매가 더 맛있다. 감을 딸 때나 밤을 딸 때 나무를 같이 흔들고 간대끼(긴 대나무 장대)를 함께 휘두르던 친구들이 함께 있어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다.

 

 추억은 사람을 익어가게 만든다.

 예쁜 것, 맛있는 것, 재미있는 것, 즐거운 것, 행복한 것들에는 좋은 사람들이 함께 있다는 것을 살면서 더 알아가는 것 같다. 나를 감싸 안고 있는 것들이 따뜻한 사랑이었고 포근한 정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글을 쓰다 보면 처음에는 각자 자신들 감정과 느낌에 푹 들어갔다가도 마음의 눈을 뜨고 둘러보면 소중한 사람이 있음을 보게 된다. 창민이는 처음에 산딸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산딸기가 어디에 많이 있고 어떻게 따고 어떻게 먹고 맛은 어떤지, 잘 익은 산딸기는 어떤 것인지. 그러다가 할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깊게 주름지고 소나무 껍질처럼 세월을 품은 손, 밭일하시면서 흙 묻은 손, 그 손으로 산딸기를 따서 입에 넣어 주셨다고 했다. 창민이는 산딸기도 먹고 할머니 사랑도 먹는다. 커가면서 할머니 사랑을 먹고 자란 창민이는 인생에서 좋은 열매로 익어간다.

 

 

  산딸나무

  전창민

 

 새 하얀 마음이 4장

 가운데 산딸기 열매를 품는다.

 

 높고 공기 맑은 곳에서 자라나는 산딸나무

 나는 높고 공기 맑은 장수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열 살 때

 할머니가 산딸기를 따서

 내 입에 넣어 주셨다.

 

 작고 붉은 몽글몽글 알알이 박힌 산딸기

 나는 할머니 마음을 먹고 산다.

박성욱 수남초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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