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이 고대 일본이 2백 년 간 통치한 땅이라고?”
“전북이 고대 일본이 2백 년 간 통치한 땅이라고?”
  • 김명성 언론인
  • 승인 2021.10.18 13:5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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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성 언론인

남원과 장수지역에서 확인된 가야 유적지를 놓고 역사논쟁이 일고 있다. 국정감사장에서도 시끄럽다. 먼 옛날에 남원은 기문국(己汶國), 장수는 반파국(伴跛國)이었다는 것. 기문과 반파는 모두 왜국이 다스린 임나에 속한 땅이다. 결과적으로 왜국이 전북까지 통치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야 유적지를 임나로 만들려는 노력(比定)은 ‘임나는 곧 가야’라고 주장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역사 서술 방향에서 비롯됐다. 일제는 이 땅을 식민지로 삼은 이유를 역사 기록에서 만들어내려 골몰했다. 임나를 가야로 만들면 일제의 침략은 고대역사에서 2백여 년간(369년~ 562년) 식민지로 삼았던 옛 역사를 되살린 것이 된다. 즉 식민지 통치의 합리적 근거가 된다.

 이를 학설로 만든 자는 일본의 관변학자 스에마쓰 야스카즈(末松保和)다. 이 주장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핵심인물인 이병도를 중심으로 지금까지 남한 학계에 식민사관(植民史觀)으로 면면히 이어진다.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이다. 천황이 통치하는 일본이 우리나라 남부지역에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고 이 땅도 다스렸다는 것. 이 주장이 황당한 것은 당시 시대상황이 담긴 우리나라 역사서와 중국 역사서에 기록이 아예 없다는 점이다(삼국사기, 삼국유사, 삼국지, 후한서 등). 반면 논란 많은 일본의 역사서(일본서기)에만 있다는 것이며 그것마저 조선총독부가 식민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근거도 없이 멋대로 해석’했다는 점이다.

 임나의 위치는 우리 땅이 아니라 일본 땅에 넓게 자리 잡고 있었다(최재석. 김석형. 이덕일 등). 당시 가야를 비롯해 백제와 신라의 일본 진출이 활발했던 사료적 근거와 해방 후 한일 두 나라의 가야 유적지 발굴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조선총독부와 이병도 중심의 식민사관에 집착하는 우리 학계는 남부지방이라고 말한다. 강한 반대에 부딪치면 그때마다 군사기관이 아니라 외교니 교역이니 왜인 자치기구니 연합 세력이라고 교묘히 말을 돌리고 있다. 결국 스에마쓰 야스카즈의 황당한 주장은 정설로 만들어져가고 있다. 일본은 남한학계, 조선총독부, 우익성향의 학자 주장을 토대로 교과서에 수록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한국은 고대에도 2백년간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전북의 동부지역에서 연이어 가야유적이 발굴되고 있다. 이는 가야의 역사문화를 새롭게 조명하는 기회이다. 특히 물산이 풍부한 전북지역 유적지는 장장 5백 년 가야제국의 위상을 밝히는 소중한 발자취이다. 지금의 만주 땅에 있던 부여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가 병립(竝立)한 5국시대의 한 축이다. 5국 중 일본 진출이 가장 활발했던 나라가 가야다. 위진남북조시대(220년 ~589년) 중국의 핵심부인 중원과 만주, 왜로 이어지는 거대한 공간과 시간으로 가야제국을 바라봐야 한다. 불과 백 년 전 일본 관변학자 개인의 음험한 주장에만 매달릴 문제가 아니다.

역사학자들의 그런 태도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가야사 프로젝트도 고대 남부지방 일본식민지경영 연구로 변질되고 있다. 1조 원 넘는 국민세금이 헛되이 새고 있다. 더군다나 가야 유적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임박해 있다. 그런데 남원, 장수지역 가야유적지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면 될 것을 굳이 기문국, 반파국의 임나 유적지라고 표기를 바꿔 등재하려는 치열한 노력을 이해할 수 없다. 고대 2백년 간 일본식민지였었다고 전 세계에 인증시키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들인가?

김명성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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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락주 2021-10-19 17:37:15
하루 빨리 식민사학에서 벗어나야 나라가 바로 설수 있습니다.^^
이름 2021-10-19 07:28:29
환빠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