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독립운동가 - 장지영, 김윤경, 권덕규 선생
10월의 독립운동가 - 장지영, 김윤경, 권덕규 선생
  • 전북동부보훈지청
  • 승인 2021.10.12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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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학회, 한글로 민족정신을 지키다

장지영·김윤경·권덕규 선생은 일제의 우리말 탄압에도 꿋꿋하게 한글을 연구하고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는데 큰 공을 세우신 분들이다. 이분들의 노력으로 일제강점기에도 우리말의 보전과 과학적 연구가 가능했으며, 민족의 얼을 지킬 수 있었다.

장지영 선생은 1921년 12월 권덕규·김윤경 선생 등과 휘문의숙에서 조선어연구회를 조직하였다. ‘조선어연구회’는 1909년에 주시경 선생이 조직한 국어연구학회를 계승한 한글 연구 단체로, 조선어의 정확한 법리 연구를 목적으로 한글연구와 표준어 확립, 사전 발간 사업을 했다.

또한 조선총독부의 일방적인 맞춤법 규정에 대응하여 한국어의 특징에 부합하는 맞춤법을 마련하는 등 한국어와 한국문화 보호에 힘썼으며 1927년 2월 최초의 국어 전문잡지인 「한글」이 창간되었다.

김윤경 선생은 1921년 12월 장지영; 권덕규 선생 등과 조선어연구회를 창립하였다. 또한 『조선어사전』편찬위원으로 선임되어, 한글연구를 체계적으로 진행하였다.

선생은 조선어학회에서 추진한 한글사업 분야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930년에는〈한글 맞춤법 통일안〉의 제정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931년 조선어표준어사정위원회 위원에도 선출됐다. 아울러 한글 교육과 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 1931년 동아일보의 지원으로 권덕규 선생 등과 전국을 순회하여 한글을 강습했다.

선생은 1937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혹독한 고문을 받으면서도 한글 연구를 멈추지 않았으며, 1938년 수감 중에 그의 연구를 집대성한『조선문자급어학사(朝鮮文字及語學史)』가 발간되었다.

권덕규 선생은 1910년 서울 휘문의숙에 입학하며 주시경 선생을 만났다. 이를 계기로 선생은 일찍이 한글연구에 입문하였고 한국 고유의 고전을 정리하고 간행하기 위해 설립된 조선광문회 사업에 참여하였다. 이곳에서 김두봉·이규영 선생과 함께 주시경 선생을 도와 최초의 한글 사전 『말모이』편찬에 참여하였다.

1929년 10월에는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 준비위원회에도 참여하여,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1931년부터 1934년까지 조선어학회와 동아일보가 주관하는 조선어강습회의 강사로 참여했으며,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선생은 1930년 동아일보가 창간 10주년을 기념하여 진행한 특집 기사에서 ‘조선어문 공로자’로 선정되었다.

1930년 맞춤법 제정위원으로 참여하고, 1932년에는 한글학자 17명과 함께 조선어철자위원회를 조직했다. 이때 조선일보 편집국장으로 재임하며 전국적으로 한글강연회를 다녔다. 그리고 1936년부터 조선어학회에서 발족된 ‘조선어사전편찬위원회’에도 참여했다.

정부에서는 고인들의 공훈을 기려 장지영 선생과 김윤경 선생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그리고 권덕규 선생에게는 2019년 애국장을 각각 추서하였다.

 
전북동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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