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삶의 매 순간의 소중함
함께하는 삶의 매 순간의 소중함
  • 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 승인 2021.09.13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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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의 말에 의하면 누군가가 태국의 ‘아잔 차’ 스님에게 물었다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변화하며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습니다. 이별과 상실은 우리 존재에 내재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행복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떤 것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안전할 수 있습니까?”

‘아잔 차’ 스님은 따뜻한 눈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고 나서 탁자 옆에 놓인 유리잔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나는 이 유리잔을 좋아한다. 이 유리잔으로 물을 마신다. 이 유리잔은 놀라울 만큼 훌륭하게 물을 담고 있으며, 햇빛을 아름답게 반사한다. 두드리면 맑고 투명한 소리를 낸다. 그러나 나에게 이 유리잔은 이미 깨진 것과 같다. 언젠가는 반드시 깨질 것이기 때문이다. 선반에 올려놓았는데 바람이 불어 넘어지거나 내 팔꿈치에 맞아 탁자에서 바닥으로 떨어지면 유리잔은 산산조각이 난다. 나는 그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여긴다. 이 유리잔의 속성 안에 ‘필연적인 깨어짐’이 담겨 있다. 그것은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유리잔이 이미 깨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이해할 때, 그것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소중해진다. 그것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

그 유리잔처럼 나의 육체도, 내 연인의 육체도 이미 부서진 것과 마찬가지임을 알 때 삶의 매 순간이 소중해진다. 소중함과 가치가 두려움과 슬픔보다 앞선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은 ‘덧없고 영원하지 않으니 집착하지 말라.’ 의미만이 아니라 ‘영원하지 않음을 깨달음으로써 지금 이 순간 속에 있는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다. ‘영원하지 않음’을 우리가 통제하려고 하지 않을 때 마음은 평화롭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크놀프」에서 주인공 크놀프가 친구에게 말한다.

“아름다운 소녀가 있다고 해 봐. 만약 지금이 그녀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고, 이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녀가 늙을 것이고 죽게 될 것이라는 점을 모른다면, 아마도 그녀의 아름다움이 그렇게 두드러지지는 않을 거야. 어떤 아름다운 것이 그 모습대로 영원이 지속된다면 그것도 기쁜 일이겠지. 하지만 그럴 경우 난 그것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보면서 이렇게 생각할 걸. 이것은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것이다. 꼭 오늘 봐야 할 필요는 없다고 말이야. 반대로 연약해서 오래 머물 수 없는 것이 있으면 난 그것을 바라보게 되지. 그러면서 기쁨만 느끼는 게 아니라 연민심도 함께 느낀다네. 난 밤에 어디선가 불꽃놀이가 벌어지는 것을 가장 좋아해. 파란색과 녹색 조명탄들이 어둠 속으로 높이 올라가서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작은 곡선을 그리며 사라져 버리지. 그래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즐거움을 느끼는 동시에 그것이 금세 다시 사라져 버릴 거라는 두려움도 느끼게 돼. 이 두 감정은 서로 연결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이지.”

우리들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일수록 더 쉽게 부서지는 것을 경험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지만. 어느 것이나 생에 한 번의 기회일 뿐이다. 다음 순간은 보장되지 않는다. 어찌 보면 우리는 모든 것을 마지막으로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이 세상 역시 우리 각각의 존재를 마지막으로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사라지고 작별을 고할 것을 알면 무엇 하나 특별하지 않은 것은 없다. 오히려 그 아슬아슬한 현존이 모든 것에 특별함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사과를 한입 깨물고 있다면, 당신은 마지막 사과를 먹고 있는 것이다. 만약 지금 차를 마시고 있다면, 마지막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이고 여행지의 어느 길을 걷고 있다면 마지막으로 그 휘황찬란한 상점들의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숨을 쉬고 있다면, 언제나 마지막으로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게 될 때까지는. 우리는 매 순간의 소중함과 아름다움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하지 않을까―.

서정환<신아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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