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독립운동가 - 올리버 알 애비슨, 로버트 그리어슨, 스탠리 에이치 마틴
9월의 독립운동가 - 올리버 알 애비슨, 로버트 그리어슨, 스탠리 에이치 마틴
  • 전북동부보훈지청
  • 승인 2021.09.06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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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한 의료 선교사

올리버 알 애비슨, 로버트 그리어슨, 스탠리 에이치 마틴 선생은 1919년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가혹하게 민중을 탄압한 총독부에 항의하고 그들의 만행을 세계로 알렸으며 그 이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해서 지원하였다.

애비슨(Oliver R. Avision)은 3.1만세운동이 벌어지자 총독부가 주최한 선교사 회합에서 한국인차별 철폐, 집회의 자유, 출판의 자유등을 요구하는 한국인들의 총독부 통치에 관한 불만을 전달하고 이런 문제를 항의하면서 개선요구를 하였다.

또한 귀국하는 선교총무 암스트롱에게 3.1운동의 실상을 알리는 비망록을 작성하여 미국 장로회, 감리회등에 보내 대책을 마련하도록 촉구했다. 그리고 3.1운동의 부상자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치료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일제 헌병경찰의 가택 수색과 환자 이송에 저항하고, 항의하였다.

미국에 귀환해서도 1942~45년 기독교인친한회 재무를 맡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과 독립운동을 지원할 것을 호소하는 활동을 했다.

그리어슨(Robert Grierson)은 성진지역 3.1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도왔다. 그는 1919년 3월 7일 저녁 성진지역에서 다른 지역과 연계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집을 비밀 회합 장소로 제공하였다.

3월 10일 성진 만세시위 당시 일제 군경과 소방대가 출동하여 한국인을 무차별 구타하고 총을 난사하여 부상자가 속출하자 적극적으로 부상자들을 치료해 주었다. 그리고 만세운동에 연루되어 옥고를 치르는 사람들을 면회하고 사식을 제공하여 이들의 만세운동을 후원하고 지지하였다.

스탠리 마틴(Stanley H. Martin)은 의료선교사로 내한, 용정선교지부에 파송되어 선교활동을 하였다.

용정이 있는 북간도 지역은 국내 만세소식을 듣고 1919년 3월 13일 독립축하회 형식의 만세운동을 펼쳤다. 이 때 일제의 사주를 받아 저지하려던 중국군이 시위대를 향하여 발포하여 많은 사상자가 나오자 병원장 마틴은 사망자의 시체는 병원 지하실에 안치하게 하고, 의료진과 함께 부상자들을 정성껏 치료해 주고, 사망자들을 위한 합동 장례까지 치러주었다.

마틴은 한국인의 독립운동에 대해 매우 호의적이었다. 그리하여 그의 지지와 협조 속에 제창병원과 그 부속건물들이 자주 독립운동을 모의하기 위한 독립운동가들의 집회장소와 숙박소로 이용되었다.

또한 일본군의 협박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병원 간호사와 함께 1920년 10월 말경 일본군의 방화 학살 현장을 방문하여 사진을 촬영하고, ‘노루바위(장암동) 학살 사건’이라는 보고서를 만들어 일본군에 의해 저질러진 대규모 조선인 학살인 간도참변의 실상을 폭로하기도 했다.

정부에서는 고인들의 공훈을 기려 올리버 알 애비슨 선생에겐 1952년, 로버트 그리어슨 선생에겐 1968년, 스탠리 에이치 마틴 선생에겐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전북동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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