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읍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였다!
정읍은 이탈리아의 피렌체였다!
  • 최재용 정읍시 부시장
  • 승인 2021.08.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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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수제천을 아는가? 아마도 정읍의 어느 하천을 떠올릴 것이다. ‘칠보천, 고부천, 정읍천 말고 수제천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하고 말이다. 솔직히 필자도 그랬다.

긴말로 괜한 골탕을 먹이기보다는 어서 말하는 것이 낫겠다. 수제천은 한자로 목숨 수(壽), 가지런할 제(齊), 하늘 천(天)이다. 그러니 일단 하천은 아닌 것이다. 수제천의 뜻을 헤아림에 있어 어려운 글자는 가운데 제(齊)다. 한자사전을 찾아보면 ‘가지런하다, 오르다, 다스리다. 성취하다’등 다양한 뜻으로 쓰이는 걸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수제천은 ‘생명이 하늘에 달할 정도로 영원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그럼 수제천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수제천은 역사 드라마를 보면 가끔 듣게 되는 음악이다. 임금의 즉위식이나 나라의 경사스러운 연회, 그리고 국가적 의전행사시 그 품격을 높일 목적으로 사용되는 음악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지금 당장 유튜브에서 ‘수제천’을 찾아 보라! 아마도 몇 초안에 손으로 무릎을 치며, 너무도 익숙한 이 음악이 바로 수제천이구나 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수제천의 본래 명칭은 ‘정읍’이라고 한다. 궁중음악의 백미인 수제천의 본명이 정읍이라는 것이 이상하면서도 놀랍지 않은가? 그럼 당초 ‘정읍’으로 불렸던 “수제천”의 역사를 좀 더 살펴보자!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로 시작되는 가사 정읍사(井邑詞)와 함께 반주음악 정읍으로 불리던 ‘수제천’은 고려시대에는 궁중음악으로 흡수되어 연주되었고, 조선시대에는 국가를 대표하는 정곡으로 발전한다.

성리학적 이념이 한층 강화되는 조선 중종 때(1506년~1544년) 이르러 가사가 왕실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사 ‘정읍사’는 떨어져 나가고 반주음악인 ‘정읍’만이 연주된다. 그러던 것이 순조 때(1800년~1834년) ‘정읍’이라는 본명을 대신하여 ‘수제천’이라는 별칭을 사용하기 시작하고, 일제 강점기(1910년~1945년)를 거치면서 별칭이었던 ‘수제천’이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되면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쯤 되면 수제천의 역사라기보다는 오히려‘정읍’의 역사라고 부르는 것이 합당할 듯하다.

아무튼‘생명이 하늘에 달할 정도로 영원하라’뜻의 수제천은 우리나라 전통음악 중 가장 품격있고 아름다운 정악곡으로 꼽힌다. 또한 유일하게 ‘정읍’이라는 지역의 지명을 궁중음악의 제목으로 사용한 곡이다. 이것은 천년이 넘는 오랜 시간, 정읍이 갖는 그 시대의 위상이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이탈리아 피렌체나 밀라노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라 할까?

1970년 유네스코 아시아 음악제에서‘천상의 소리가 인간 세상에 내려온 것 같다’라는 평을 들었던 수제천은 국립국악원과 같은 우리나라 최고의 기관에서 널리 연주되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수제천의 본고장 정읍에서는 단지 음악을 사랑하는 일반 시민이 중심이 되어 ‘수제천보전회’를 만들고 민간주도로 수제천을 연주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현직 소방관도, 학교 선생님도 있다. 평일 저녁과 주말을 활용하는 연습은 누구보다 열정이 넘친다. 연간 수백억원의 돈을 쏟아부어 세계 최고의 연주자로 구성된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나 런던 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우리 정읍의 순수함과 열정을 어찌 따라갈 수 있겠는가!

이것이 1천 5백년전 백제시대 정읍사와 정읍(수제천)을 오늘까지 이어지게 만든 원천이며 정읍의 저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에 화답하듯 정읍시에서도 2014년 수제천보존회 지원 조례를 제정하고, 민선 7기에 들어서는 운영비까지 일부 지원하며 지역의 자발적이고 애틋한 보존 노력을 응원하고 있는 것이다.

최재용<정읍시 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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