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쿨 재학 시절, 교수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판례에 익숙한 단어가 보였다. ‘새만금’. 학부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면서 노태우 정부의 전라북도 민심 달래기 일환으로 추진된 사업으로 배웠다. 1991년 착공하여 약 18년만에 겨우(?) 완공된 방조제와 아직도 진행중인 나머지 공사들에 대해 배운 기억이 나서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십 수년간 서울생활을 하면서 전북의 문제가 대법원 판례까지 등장한 경우라 더욱 자세히 보았던 것 같다.
당시 대법원 판결(2006두330 정부조치계획취소등)은 환경론과 개발론 사이에서 법원이 개발론에 손을 들어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행정법의 주요 쟁점인 원고적격부터 사업 경제성과 환경권 사이의 비교형량에 관한 중요한 판례였다. 옆에서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말했다. “그런데 전북엔 평야가 넘치지 않아? 땅을 넓혀서 뭐할려고?” 그랬다. 땅을 넓혀서 무엇을 하려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처음 계획을 세운 20여년 전과 달리 시대가 변하고 갈수록 쌀 소비가 줄어들면서 새만금의 농지로서 활용 가치는 낮아졌다. 계획도 여러번 수정됐다. 한동안 새만금사업은 지지부진했다. 새만금특별법 개정안 통과로 기업 투자 유치, 공항 건설등 다른 목적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16년에는 새만금에 강원랜드와 같은 내국인 출입 카지노 설립도 검토되었을 정도로 다각도로 활용방안이 모색되어 왔다. 2017년에는 2023 세계잼버리 대회도 유치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원자력 발전의 비중을 줄이면서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주목받자 뜬금없이 태양광패널이 설치되었다. ‘새똥’에 뒤덮인 태양광 패널 사진이 주요 중앙 일간지에 실리면서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물위에 떠다니는 부유체 위에 햇빛을 흡수하는 태양광 모듈을 설치한 이른바 ‘수상광’인데, 세계적인 철새도래지라는 새만금의 지리적 특성을 무시한 결과라는 비판이 많다. 태양광 사업의 경제성을 떠나 수십년의 세월 동안 진행된 국책사업에 급조된 정책이란 비판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심지어 감사원이 월성원자력발전소 감사에 이어 새만금 태양광 사업도 감사할 것이라고 한다(2021. 8. 12. 조선일보 기사 참조).
새만금에 신공항을 건설하는 제6차 공항개발종합계획에 대하여 환경단체의 반발 또한 심하다. 환경적인 측면을 논외로 하더라도, 전국에 넘쳐나는 지방 공항들의 말로를 보면 과연 경제적인지 의문이다. 처음 사업이 입안되었을 당시에 초등학생에 불과했던 필자가 전북도민의 열망으로 불리는 새만금 사업에 대해 그리 할말은 많지 않다. 다만 전국적으로 보아도 법적, 행정정책적, 경제적, 환경적, 그리고 지역소외라는 정치학적 쟁점이 이토록 혼재되어 있는 사업은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은 확실해 보인다.
전북의 인구는 2021년 3월말 기준 179만여명으로, 180만이 붕괴된지 한참이다.출산율 감소가 전국적인 인구의 감소세로 이어졌지만 전북은 출산율 감소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침체로 인한 인구의 유출 이중고를 겪고 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부분은 20~30대 청년인구의 타지역(수도권 등)으로의 유출이 주요 원인이라는 점이다. 일자리가 없어 고향을 등지는 것이다.
내년은 대선과 지선 등 굵직한 선거를 앞두고 있다. 후보자들은 익숙한 얼굴들이다. 그렇다고 참신한 새인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역동적인 다른 지자체와 달리 변화의 바람도 없다. 정치인에 기대어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요원하기는 마찬가지다. “땅을 넓혀서 뭐할려고?” 서울 친구의 물음에 대한 답은 언제 할 수 있을까.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