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콩나물 비빔밥, 콩나물 해장국 세계적인 건강 음식
전주, 콩나물 비빔밥, 콩나물 해장국 세계적인 건강 음식
  • 정영신 전 전북소설가협회회장
  • 승인 2021.08.2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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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신 전 전북소설가협회회장

입추가 지났다. 대자연의 순리대로 입추가 지나니 그 작열하던 한여름 태양빛이 순하게 고개를 숙인다. 아침 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하다. 한참을 눈을 감고 그 바람을 맞는다. 가슴 속까지 시원하다. 눈꽃팥빙수로 더위를 식히던 8월도 벌써 하순에 접어들었다.

무더위 속을 헤매다 집에 돌아오면 얼음을 동동 띄운 시원한 콩보리미숫가루 한 그릇을 벌컥벌컥 비웠는데, 그리고는 오이를 잘게 썰고 불려 놓은 완도산 미역에 양파와 마늘, 당근을 채를 썰어 넣고 얼음물을 부어 오이미역 냉채에 밥 한 그릇을 말아 후루룩 맛있게 먹었는데, 벌써 입추가 지나고 가을이 오고 있다. 이제 눈꽃팥빙수가 너무 차다. 조금은 얼큰하거나 매콤하거나 따뜻한 국물로 여름내 차갑게 식혀 놓은 위장을 달래고 싶다. 그렇다. 그 음식, 전주의 명음식, 콩나물 해장국, 콩나물 비빔밥이 딱 어울릴 것 같다.

  어린 시절 어머니는 바람이 좀 선선해지면 아궁이에 불을 지펴 무쇠솥에 흰쌀을 넣고 적당하게 밥물을 붓고는 한바탕 펄펄 끓으면 뚜껑을 열고 씻어 놓은 콩나물을 넣고는 다시 한 번 더 뜸을 들인다. 어머니는 아삭아삭 알맞게 데쳐진 콩나물과 윤기 나는 흰쌀밥을 나무주걱으로 휘익 골고루 섞고는 동그랗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가족들 밥그릇에 가득가득 담는다. 가족들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콩나물밥에 쪽파와 참깨, 참기름과 고춧가루가 싱싱하게 올려진 양념간장을 한 숟가락 떠서 쓱쓱 비빈다. 그리고는 모두들 크게 한 숟가락씩 야무지게 떠서 한 입 목 안으로 넘긴다. 햐아- 정말 맛있었다. 이제 작고하신 그 어머니의 나이를 훨씬 넘어 이렇게 긴 세월이 흘렀지만, 작은 방 안에 둘러앉아 콩나물밥을 양념간장에 비벼 먹던 그 어린 날의 추억들이 오히려 더 새록새록 기억 밖으로 새어나온다.

  콩나물은 거의 매일 우리 밥상에 올라와 있었다. 어머니는 된장찌개나 김치찌개, 명태찌개, 미역국과 번갈아서 자주 콩나물국을 끓여 주셨다. 콩나물을 다듬어 냄비에 담고 물을 적당히 붓고는 단백하게 소금을 넣고 매운 고추도 한두개 썰어 넣는다. 그리고 고춧가루를 한 두 스픈 넣어 국물이 펄펄 끓으면 마늘과 굵은 파를 넣고 또 한 번 끓인다. 가끔 고춧가루를 넣지 않은 맑은 콩나물국을 냉장고에 넣었다가 시원하게 먹기도 했다. 또 어머니는 콩나물국이 한 번 펄펄 끓고 있을 때 콩나물만 따로 건져 내어 참기름과 고춧가루와 파와 마늘, 깨소금을 뿌려 콩나물무침을 내놓았다.

그 콩나물무침에 무생채만 있으면 간단하게 고추장과 참기름만 넣어 손쉽게 자주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다. 여름에는 여기에 뒷마당 텃밭에서 갓 따 온 상추를 넣고 쓱쓱 비비면 더 신선한 콩나물 비빔밥이 된다. 또 생콩나물에 간장과 고춧가루, 파와 마늘, 청양고추, 양파와 참기름을 넣고 한참 볶으면 전주식 콩나물 볶음이 된다. 이 콩나물 볶음에 밥 한 공기를 넣고 또 쓱쓱 비벼 먹으면 그 감칠맛에 밥 한 그릇을 더 먹게 되는 밥도둑 반찬이 된다.

  날이 더 추워지고 눈발이 날리면 어머니는 이 콩나물국에 잘게 썬 묵은김치와 부안 인근 갯바위에서 갓 따 온 작은 굴과 두부를 넣고 다시 한번 끓여 밥상 위에 올려놓는다. 창밖에는 함박눈은 쏟아지고 아삭아삭한 콩나물과 새콤한 김치 가닥 사이에 눈만 가리고 숨은 통통한 굴 몇 개를 찾아 후루륵 입안에 넣고 호오- 호오 – 뜨거운 김을 뿜어내며 떠먹는 굴김치콩나물국은 한겨울에 맛보는 전주식 별미 중의 별미였다. 그렇게 콩나물은 국으로 무침으로 볶음으로 늘 우리 식탁에 또 하나의 가족같은 존재로 함께하며 물성이 독해서 토질병이 생긴다는 우리 전주사람들의 건강을 지켜 주었다.

  어린 시절 매일 같이 올라오는 콩나물이 너무 질려서 어머니께 왜 또 콩나물이냐며 입을 내밀면 전주는 옛날부터 물의 질이 좋지 않아 토질병이 생겼기 때문에 이 콩나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며 어린 딸의 불평은 귀 밖으로 흘려 버리시고는 당신의 믿음대로 그 후에도 내내 콩나물을 넣은 음식들을 당당하게 밥상 위에 올려놓으셨다. 그 시절 어린 마음에 늘 똑같이 올라오는 그 콩나물 음식이 별로 먹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이제 중년의 산을 다 넘어 또 다른 세월의 산 앞에서 겸허히 고개를 숙이고 보니, 그 어머니의 지혜로우신 콩나물 음식 덕분에 여러 성인병이며 갱년기 노화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것 같다.

콩나물은 값도 저렴하고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조리 방법도 간단하다. 게다가 생콩에는 없는 콩나물 뿌리의 풍부한 비타민C와 아스파라긴산이 알코올 분해와 지방 분해, 피로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에서 총장을 지내신 장명수 작가는 『전라도 관찰사 밥상』에서 예로부터 전주 초록바위 인근 땔나무시장의 나무장수들이 막걸리를 곁들여 콩나물 해장국을 즐겨 먹었으며, 지금은 남부시장 골목과 삼백집 등이 콩나물 해장국으로 음식 관광명소가 되어 국내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 전했다.

  입추가 지났다. 이른 가을바람이 아침 저녁으로 선선하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전주의 명 음식, 얼큰한 콩나물 해장국이나 콩나물비빔밥으로 뜨거운 여름 햇살에 지친 몸과 마음을 좀 다독여 보자.
 

 정영신 <전 전북소설가협회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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