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헌책방과 책방골목, 학생들의 손길이 이어진다.
사라지는 헌책방과 책방골목, 학생들의 손길이 이어진다.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1.08.16 16: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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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의 추억이 담겨져 있는 곳인데 / 점점 없어져 가고 있네”

 부산 시민들과 동주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쓴 ‘보수동 책방골목 와보시집’에 실린 이 시는 보수동의 현재 모습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부산광역시 보수동의 책방 골목은 근대와 현대를 잇는 출판역사의 한 장이고, 이 비어가는 페이지를 채울 방법은 아직은 막연한 상황이다.

 보수동 책방 골목은 1950년 6.25 전쟁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을 때 이북에서 피난 온 손정린씨 부부가 만든 ‘보문서점’이 시작이다. 보수동 사거리 입구 골목 안 목조 건물 처마 밑에서 박스를 깔고 미군부대에서 나온 헌 잡지, 만화, 고물상으로부터 수집한 각종 헌책 등으로 노점을 시작한 것이 지금의 보수동 책방골목이 되었다. 6.25 이후 피난민이 정착하면서 학생들이 늘어나고, 헌책방의 수요와 공급은 성황을 이뤘다. 1960년에서 70년대에는 약 70여개의 점포가 있었으나 2021년 현재는 31곳만 남았다. 특히 작년에는 작년 책방골목 입구에 있었던 서점 8곳이 오피스텔 신축 공사로 지워졌다. 서점 두 곳은 이전하고 6곳은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탓이라는 것과 별개로 서점들의 수는 이전부터도 줄었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이 공간을 다시 살리고 싶다는 것은 보수동 근처의 학생들과 선생님이다.부산 서구 토박이인 김성일(35) 교사는 학창시절부터 책방골목을 자주 다녔다. 사라지는 책방들을 보며 지난해 동주여고에 근무할 시 학생들과 동아리를 만들고 책방 알리기에 나섰다. 김성일 교사는 동주여고 학생들과 함께 동아리를 만들고 SNS에 지속적으로 소개했다. 이에 최대호 시인과 박기량 치어리더 등 부산 시민들이 참여해 200여편의 시가 모였다. 이들은 작년 12월 ‘와보시집’을 출간하고 보수동 책방에서 책을 파는 등 직접적인 활동으로 이어갔다. 이들이 만든 수익은 70여만원이었으며, 학생들과 김 교사는 어린이도서관에 해당 금액을 기부했다.

 이들의 노력은 작년으로 그치지 않았다. 현재 혜광고 학생들은 동주여고 학생들과 함께 보수동 헌책방 살리기에 동참했다. 혜광고 학생들은 ‘보수동, 그 거리’라는 제목으로 앨범을 내고 유투브에 뮤직비디오를 올렸다. 이들은 직접 아이디어와 기획을 짜면서 보수동의 어떤 점을 보여줄 것인지를 스스로 고민했다.

 동아리에 참여한 이준영 학생과 박건준 학생은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 대해 “어렸을 때부터 계속 다녔고, 중학교때 많은 책을 샀다. 이 곳이 낡았을지라도 사라져서는 안 되는 골목인 것을 느낀다”라고 말했다. 이준영 학생은 “보수동은 언덕도 높고, 일반 가정집도 많고 현대화도 잘 안됐지만 그런 점이 오히려 보수동의 정체성이고, 그래서 더 책방 골목이 소중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성일 교사에게 보수동 헌책방 골목은 어떤 곳일까. 그는 이 공간이 부산의 오래된 공간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교사는 “사람들이 헌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골목길은 부산의 문화와 역사가 함께하는 골목길이다”라며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 대한 기억은 과거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곳을 찾는 주민들과 학생들이 보는, 생명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노력과 부산시 중구의 행정기관들은 앞으로도 보수동 헌책방 골목을 어떻게 살릴지 고심하고 있다. 특히 헌책방을 지키는 이들을 설득하고 부산시민들의 발길을 모으는 부분에 대해서 함께 고심하고 있다. 보수동 책방골목 문화관 고은화 시설운영계장은 “책방 골목 세대가 이어지려면 2세 경영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단절된 상태다. 책방골목이 이전에도 새로운 시도를 했으나 뚜렷한 성과로는 이어지지 않은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은화 계장은 “헌책방 골목의 인프라는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 책방골목 전시회, 사직문화전시 및 행사 연계 등으로 이 골목에 사람들이 많이 오고, 젊은 주민들이 찾을 수 있도록 새로운 시도를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헌책들을 찾는 사람이 줄어들지만 그럼에도 이 공간이 자본적인 논리로 사라지면 안 된다는 뜻을 실천하는 것은 평범한 학생들과 선생님이 만든 기적이다. 이는 학생들과 선생님이 ‘추억이라는 점’을 공유해서다. 문화가 있는 공간에 대한 애정은 관의 재력 투자보다, 민간의 뜻이 더욱 크게 파문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휘빈 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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