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세대가 아프다’
‘청년세대가 아프다’
  •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
  • 승인 2021.08.0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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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장

서울대학교 김난도 교수가 쓴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있다. 불안한 미래에 대한 걱정과 외로운 청춘을 보내고 있는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총 42편의 편지 형식의 격려 메시지를 하나로 묶어서 낸 책이다. ‘시작하는 모든 존재는 늘 아프고 불안하다. 하지만 기억하라, 그대는 눈부시게 아름답다.’라는 책 속의 문구처럼 존재적 불안을 가진 청춘들의 아픔을 위로하면서도 성장을 위한 아픔을 당당히 인정하고 가능성을 향해 열심히 노력하라는 내용이다.

작가의 메시지가 특유의 다독이는 듯한 필체와 쉽게 읽히는 내용으로 알려지면서 20, 30대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며 2010년 출간되어 2011, 2012년 연속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출간 초기 호의적이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던 것과는 달리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비판을 받으며 온갖 조롱에 시달리게 되면서 결국 책은 절판되고 만다. 비판의 요지는 이렇다. 청춘의 필연적 불안과 고통을 딛고 자신을 위한 끝없는 개발과 노력으로 인생을 발전시켜나가라는 작가의 의도는 ‘헬조선’이나 ‘수저계급론’, ‘열정페이’ 같은 용어의 유행 등,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발버둥쳐도 사회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극복될 수 없음이 증명되었다고 생각한 수많은 청춘에게는 오히려 조롱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책을 읽어보면 청춘의 아픔에 따뜻한 위로를 전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결코 그런 뜻이 아님에도 진짜 아픈 청춘들은 이 책을 보면 “나 때는”이라는 말로 상징되는 꼰대의 훈계처럼 들렸기에 오히려 화가 났던 것이다. 정신의학 공부를 하면서 우울증이나 자살시도 환자를 보고 섣불리 ‘열심히 살라’는 식의 위로를 하지 말 것을 배우는데, 그 이유는 오히려 환자가 자신의 마음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는 반발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심리가 베스트셀러가 한순간에 최악의 책으로 뽑히는 반전을 가져온 것이다.

전통적으로 우울이나 불안, 화병으로 대변되는 생애주기별 정신건강 문제는 중년층이나 노년층의 문제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과거에는 정신건강의학과를 이용하는 주 환자층은 50~70대의 노장년층 특히, 여성이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지난 한 해 필자의 의원을 찾은 환자의 나이별 통계를 검토한 결과 20~30대 청년층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최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1년 2분기 코로나19 국민정신 건강 실태조사’에서도 20·30대의 우울 평균 점수와 우울 위험군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우울 위험군 비율은 20대 24.3%, 30대 22.6%로 50·60대 13.5%에 비해 1.5배 이상 높은 수준이었다. 전체 자살 생각 지표는 12.4%로 2020년 3월 16.3%에 비해 3.9%P 감소했으나 2019년 4.6%(자살 예방백서)의 약 2.5배 수준으로 여전히 국민 전체가 높은 수치를 기록했는데 전문가들은 코로나 등에 의한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분위기의 침체가 그 원인으로 판단하였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우울과 마찬가지로 20대와 30대가 자살지표 역시 17.5%, 14.7%로 가장 높았고, 50대 9.3%, 60대 8.2%의 두 배 정도로 나타났다. OECD 국가의 압도적 1위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자살률에서도 그동안 노인 빈곤층에 따른 노인 자살률이 주도하고 있었는데 최근 몇 년 사이 20~30대의 청년 자살률이 급증하면서 자살 고위험군도 바뀌고 있는 실정이다.

청년실업률 33만 명, 대도시 주거비 상승률 52%, 1인 가구 216만 가구, 1,000명당 결혼 건수 5건(역대 최저)로 모든 통계들이 현시대의 청년세대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다. 1인 가구 216만 세대의 대부분이 청년세대인데 이런 가족 중심 문화의 빠른 해체는 청년세대를 사회적 고립으로 내몰고 있다고 보여진다. 사람에겐 자신을 받아들여 주고,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안전기지’로서 가족의 기능은 해체되고 전통적으로는 가족, 친구, 직장 동료가 서로 안전기지가 되어주었으나 보시다시피 1인 가구가 증가하고 높은 실업률은 회사나 집단에서 퇴출되며 심리적 ‘안전기지’가 부재한 사람들이 늘고 있다.

청년세대의 정신건강 문제가 급속히 악화하며 우울, 자살 같은 문제가 증가하고 정신건강의학과를 스스로 찾아 고통을 호소하는 청년이 늘고 있는 사회 현상은 결코 그들의 나약함이나 개인의 문제로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룻밤 사이 수십억씩 상승하는 서울 아파트와 가격과 ‘아빠 찬스’, ‘엄마찬스’로 특권과 특혜를 누렸다는 많은 뉴스와 소문들…

청년들의 깊은 무력감을 넘어선 분노가 결국 우리 어른 세대 잘못인 것이다. 한편 내년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들이 서로에 대한 네가티브성 폭로만으로 싸우는 뉴스를 보면서 왜 제대로 된 청년 정책이나 희망을 보여주는 후보는 없는지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김형준 <휴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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