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에 덴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 주름이다
세월에 덴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 주름이다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7.1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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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이 모든 것은 자산에서 시작되었다』 (리사 앳킨스, 멀린다 쿠퍼, 마르티즌 코닝스 지음, 사이 펴냄)에서 직업이나 임금 등으로 결정되던 계급이 이제는 자산 보유에 따라 결정된다고 한다.

책은 자산 보유 정도에 따라 다섯 가지 계급으로 분류했는데 공감이 간다. ‘투자자’‘주택 담보 대출이 없는 주택 소유주’ ‘주택담보 대출이 있는 주택 소유자’ ‘임차인’ ‘노숙자’ 순으로 분류한다. 참 재밌었으며 과연 나는 어느 계급에 속하는지 눈도장을 찍어 보았다. 자녀와 손자들은 나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리라는 희망이 어둠으로 덮쳐온다.

20·30대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 ‘빚투’(빚을 내어서 투자한다)로 부동산을 매입에 혈안이 된 듯싶다. 당장 서울로 취직이 되어서 올라간 가족이 상상 밖의 집값에 하늘이 노랗다고 할 때 도와주지 못하는 부모가 무능해 보이는 세상이 되어 한스럽다.

자산경제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어떻게 숨을 쉬며 살아갈 것인지 염려된다. 착실히 월급을 모으면 꿈에 그리던 새집을 장만하고 부풀었던 희망을 가족들과 나누며 신나게 살 그런 세상이 왔으면 한다.

갑자기 석유풍로가 떠오르며 심지에 성냥불을 붙이던 나의 찬 손에 깊고 슬픈 기억이 떠오른다. 그을음을 잔뜩 뒤집어쓴 풍로는 메케한 냄새를 품고 따뜻한 온기를 주었다. 그 불꽃 위로 아이들을 씻길 목욕물 가득 채운 찜통이 따끈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사계절을 날씨에 맞추어 가며 부엌에서 목욕하고 살면서도 행복했었다.

목욕이 끝나면 아귀가 맞지 않은 냄비에 쌀을 채우고 끓였다.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불러 웃음이 얼굴 가득 물결처럼 파동을 일었다. 하루의 고생은 하루의 통장 잔액으로 불어났다. 고통이 행복을 불러왔었다. 그렇게 살면서 점점 더 좋은 주택으로 이사를 했으며 자녀들은 사회에서 꼭 필요한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

어둠 속에서도 먼 산의 등줄기가 잘 보였으며 항상 무지개 같은 아름다운 희망이 아른거렸다. 절망이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책에서 말하기를 “사회적 이동이 정지되고 임차인에서 주택 소유주로 넘어가는 사다리가 끊긴 폐쇄적인 이동 불가 시대”가 되었다고 한다. 얼마나 절망적인 희망인가. 작가들은 ‘손쉬운 탈출구’는 없다며 희망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욱 안쓰러운 자녀 세대의 경제적환경이 무섭고 두렵다. 어떻게 해서 여기까지 강물은 흘러왔는가.

밀레니얼(1980~2000년대 출생한 세대) 세대는 요즈음 같이 노동 임금만으로 부동산을 매입하고 중산층의 삶을 누릴 수 없다는 절망적인 삶에 물들지 않았으면 한다. 엄청난 낭떠러지에서 방황하지 않도록 정치인이나 사회적 제도장치로 그들을 꼭 붙잡아 주었으면 한다.

자산경제 시대의 환경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 간절해서 연꽃 만나러 덕진공원을 거닐었다. 그동안 살아온 내력이 나이테처럼 몸에 고스란히 지닌지라 마치 의사가 청진기로 몸속에 맺힌 울음을 끄집어내어 그 소리를 들었다.

가만히 빈 의자에 앉아 새소리를 앉히노라면 스쳐 지나간 얼굴이 찬찬히 떠올라 기억이 깊게 우러난다. 긴 세월에 덴 흔적이 나무의 옹이처럼 주름이 되었다. 가능한 모든 생각을 잘게 쪼개어 조각들이 나무 그늘에서 나와 체온을 나누기를 연꽃 바람에 기대해 보았다.

나무도 저항할 힘을 잃게 되면서 죽음 쪽으로 기울어진다는데 한쪽으로 기운 어깨를 바로 세우며 ‘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낮고 굵은 목소리로 소가 되새김질하듯 들렸다. 분명 서너 번 들렸다.

‘단죄비’- 단단한 대리석에 새긴 글씨가 망치를 잡고 뒤통수를 때린다. 김해강 시인의 단죄비는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마치 사형선고처럼 날카로운 칼날이 눈앞에서 번뜩였다. 단죄비를 바라보고 핀 도리지꽃 대여섯 송이가 서로 보랏빛으로 어울린다.

새벽 먹구름은 빗방울이 되어 아름다운 연꽃을 적시는 덕진공원 호수에서 “나는 어떤 시를 쓰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노거수에 물었다.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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