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
공정하다는 착각
  • 이윤애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 승인 2021.07.0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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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재명의 ‘공정과 성장’, 윤석열의 ‘공정과 상식’에 이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공정한 경쟁’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유행어처럼 공정담론이 뜨겁다. 시대정신으로 ‘공정’이 각광받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불공정했었다는 근거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세 사람이 주장하는 공정의 의미는 그 결에서 많은 차이가 느껴진다. 다르게 읽혀지는 공정의 의미를 비교검토해 봐야 할지 다층적으로 주장하는 현상을 그대로 수용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공정의 의미가 모두에게 보편성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 입에서 침을 튀기든 키보드위에서 손가락이라도 바빠져야 할 것 같은 의무감마저도 든다.

예상했던 대로 이준석은 국민의힘 당대표에 선출되었다. 조직의 수장은 50대 후반에서 60대를 넘어서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풍토에서 이준석 당대표 등장은 획기적 사건이었고 세대의 정치교본을 다시 쓰고 있다. 이준석의 파격이 여의도의 표준이 되어야 한다며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시험을 치러 선거후보자를 결정하겠다며 기염을 토하고 있다. 그의 야심찬 포부는 공정에 대한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이미 당대변인 선발을 위한 ‘나는 국대다’라는 토론배틀에서 두 명의 ‘이대남’이 결정되었다. 이 자리에서 이대표는 “기회는 평등했고 과정은 공정하기 때문에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고 불만은 없을 것”이라며 현 대통령의 취임사를 빗대며 정부·여당의 공정은 공정하지 않지만 자신들의 공정은 공정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대변인도 공정하게 실력으로 선발되었고 앞서서 최고위원 경선에서도 투표로 세 명의 여성이 당선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평소 이대표의 ‘할당제 반대’ 명분을 더욱 공고히 해줬다. 공정이 ‘능력주의 혹은 실력주의’로 치환되어 가는 과정으로 여겨져 염려도 된다.

또 다른 장면은 얼마 전 임명된 박성민 청와대 청년비서관을 둘러싼 ‘공정성’ 논란이 뜨겁다. ‘20대’ ‘여성’ ‘발탁’ 등의 키워드는 공정이라는 스크린을 거치면서 경험이 일천한 ‘어린 여성’이 특혜를 받아 고위 공직에 올랐다는 비난으로 직결되었다. 공정을 원하는 청년들이 분노한다는 반응도 덧붙인다.

이구동성으로 주장되는 공정이 과연 세대 및 계층과 젠더 등에 기반해서도 기울어지지 않았고 공정한가의 문제이다. 그동안 이 문제의 희생자는 항상 생득적 기반이 없는 청년과 여성이었다. 그중에서도 젊은 여성은 동네북이 되었고 자격논란은 유독 여성을 향해 더 혹독했다. 박성민의 사태는 공정과 청년의 문제를 합목적적이고 객관적으로 해결해 낼 수 있는 방향성이라기보다는 젊은 남성 보수의 부상으로만 읽혀져 걱정이 앞선다.

한국사회에 ‘정의’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은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주의의 허구를 파헤친다. 그는 능력이 개개인의 노력과 재능을 바탕으로 추구되는 ‘공정’의 최고 가치로 여겨지는 현실을 적시하며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도발해 ‘아니다’로 결론짓는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되는 게임의 룰은 능력주의의 폭정이라고까지 단언하고 있다. 요즘 우리사회를 진단하고 반추해 볼 수 있는 최고의 텍스트라 여겨져 밑줄 그어가며 읽었다.

대선을 준비하는 후보자들은 이대남 잡기에 공을 들인다. 여성가족부도 폐지하고 군가산점도 부활시키고 군필자에 주택청약 가점도 부여하겠다는 후보도 나타났다.

이분들께 마이클 샌델의 책을 일독하시길 권해드린다.

이윤애<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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