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딜레마와 예의(禮儀)
고슴도치의 딜레마와 예의(禮儀)
  • 김동근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승인 2021.07.0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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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이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또는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인간은 개인으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고 행복감을 느끼며 공생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간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우리 인간의 삶의 규칙이 완전히 흔들리고 있다. 전염병 감염 우려로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지고 사회적 교류도 위협적인 일이 되어 버렸다. 접촉에 대한 공포심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인간의 고립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안전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더 보수화되고 있다. 기업의 경우에도 전 세계에 공장을 설립하고 부품을 조달하여 왔지만(세계화),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외국보다는 국내에서 부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변화시키고 있다(탈세계화와 민족주의).

세계 각국은 인간의 삶의 규칙을 코로나 이전 세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기고 있다. 여전히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인간은 백신접종을 통해 어느 정도 코로나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국 독립기념일(7월 4일)에 완벽하게 코로나를 극복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은 코로나로부터 독립했다는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개인의 파편화와 보수화가 가속하고, 기존 성공 방식이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새로운 산업이 등장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명제가 종말을 맞을 것으로 예측하는 미래학자(토머스 프레이 다빈치연구소장)도 있다. 그러나 코로나 이전에도 인간의 일상생활은 소셜 미디어인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 다양한 SNS 플랫폼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다만 코로나로 인해 타인과의 대면 접촉을 줄인다는 뜻이 담긴 ‘언택트(untact) 문화’가 급속히 앞당겼을 뿐이다.

언택트 시대에 인간의 모든 관계가 단절된 것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형식적이거나 그다지 필요하지 않던 관계는 정리되었지만, 함께 사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등 소수의 관계는 예전보다 훨씬 더 돈독해지는 경향이 나타났다(딥택트(deeptact). 맞벌이부부나 사회생활에 바빠 가족이나 친구들과 자주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재택근무나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인간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관계에서 서로 친밀함을 원하면서도 동시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1인 가족이 생겨나면서 인간관계의 두려움과 타인과의 거리두기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남에게 상처주기도 싫고 상처받기도 싫어 혼자 고립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인간의 이러한 심리상태를 비유한 말이 고슴도치의 딜레마(Hedgehog’s dilemma)이다. 고슴도치의 딜레마는 스스로의 자립과 상대와의 일체감이라는 두 가지 욕망에 의한 딜레마이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저서 <여록과 보유(Parerga und Paralipomena)>에서 인간의 독립성과 타인과의 일체감 사이의 갈등을 고슴도치에 비유하였다. 추운 겨울에 서로 온기를 위해 고슴도치 몇 마리가 모여 있었다. 고슴도치가 모여 서로를 따뜻하게 하고 싶어 하지만 서로 바늘 때문에 너무 가까이 가면 서로 찔리고 너무 멀어지면 온기를 나눌 수 없는 딜레마 상황에 빠지게 된다. 수많은 모임과 헤어짐을 반복한 고슴도치들은 다른 고슴도치와 최소한의 간격을 두는 것이 최고의 수단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실제 고슴도치들은 바늘이 없는 머리를 맞대고 체온을 유지하거나 수면을 취한다.

우리 인간에게도 많은 가시가 있다. 가시투성이인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인간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아프게 한다. 고슴도치처럼 인간도 서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찾아낸 방법이 예의(禮儀)이다. 예의는 “사람이 지켜야 할 예절과 의리”를 뜻한다. 예의의 핵심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이다. 논어 제20편에 ‘부지례 무이입야(不知禮 無以立也)’란 구절이 나온다. 이 구절은 ‘예를 모르면 사회에 설 수 없다’는 뜻으로 “예의란 결국 타인과 더불어 살기 위해 내 의무와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인간은 예의를 통해 서로의 온기는 적당히 유지하면서 서로의 가시에 찔리는 일도 없게 되었다. 철학자 니체는 “함께 침묵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멋진 일은 함께 웃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로를 잘 살피고 아껴주고 이해하며 아프지 않게 말하고 양보하면서 고슴도치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김동근<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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