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의 독립운동가 - 손일봉·최철호·박철동·이정순 선생
7월의 독립운동가 - 손일봉·최철호·박철동·이정순 선생
  • 전북동부보훈지청
  • 승인 2021.07.05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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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독립전선의 샛별이 된 호가장 전투의 영웅들

손일봉, 최철호, 박철동, 이정순 선생은 조선의용대 소속으로 호가장 전투에서 치열하게 적군과 전투하다 순국하신 열사들이다.

조선의용대는 무장투쟁을 통한 적극적인 항일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화북진출을 추진했고 일부지대가 1941년 7월 7일 화북지역인 태항산으로 입산하여 ‘조선의용대 화북지대‘로 재편되었다. 이들은 입산한 태항군구 명령에 따라 무장선전대(무선대)로 개편되어 일본군 점령지역에서 무장투쟁 및 선전활동을 펼쳤고, 그러던 중 호가장 전투를 치르게 되었다.

호가장 전투란 1941년 12월 12일 조선의용대 화북지대 무장선전대 제2대 대원 19명이 숙영지이던 호가장 마을을 포위 기습해온 일본군 및 황협군(皇協軍) 200명과 맞싸운 것을 이른다.

당시 아군은 불리한 형세 속에서 탄환도 아끼면서 싸워야만 했다. 대원들은 고정지점에서의 방어를 불리한 것으로 여기고, 농가를 빠져나가 인근 고지로 이동하여 방어하려고 했으나 적이 강력하게 추격하자, 후위를 엄호할 부대가 필요했고 손일봉 분대장을 비롯해 최철호, 이정순, 박철동, 김학철 대원이 자원했다.

이들은 다른 대원들이 포위망과 추격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때까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는 것이 임무였다.

5명의 후위대는 본대가 퇴각 정비할 때까지 용맹분투하여 4명(손일봉, 최철호, 박철동, 이정순)이 순국하였고 김학철은 포로가 되었다. 덕분에 본대는 건너편 산등성이로 다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11시쯤에 팔로군 지원대가 도착하여 적을 격퇴하였다.

손일봉 선생은 평북 의주에서 출생했으며, 3.1운동에 참여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독립운동의 꿈을 키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1934년 한국독립당원 강병학과 일본군 사령관을 폭살하려는 거사에 참여했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육군군관학교에 입교하여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조선의용대에 참여하였다.

최철호 선생은 대전에서 출생했다. 1937~38년까지 육군군관학교들에서 교육받으며 군사역량을 키웠고 조선의용대 창설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박철동 선생은 충북 출신으로 학창시절에 학생운동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민족혁명당의 지령으로 중국 남쪽으로 임무를 수행하러 가던 도중 체포되어 3년간 징역을 살았고 출옥 후 중국으로 건너가 조선의용대 1지대에 참가하였다.

이정순 선생은 평북 벽동 출신으로 의열단 간부인 형 이영준의 영향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의열단계열 학교를 졸업하고 의열단에 참여하였다. 중일전쟁 이후에는 육군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의용대 창설에 참가했다.

정부에서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손일봉, 최철호, 박철동, 이정순 선생에게 각각 199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전북동부보훈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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