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서로 길들이면서 살면 어떨까요!
우리 서로 길들이면서 살면 어떨까요!
  • 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 승인 2021.06.1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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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10일 9시 정각, 백신 접종장소인 화산체육관에 도착했다. 백신 맞을 사람들을 태운 버스들이 여러 대 동별로 들어오고 승용차도 주차할 곳을 찾아 이리저리 자리를 찾고 있다.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는 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여기저기에 허리 굽은 노인을 옆에서 부축하며 임시 설치해 놓은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긴장감을 준다. 번호표를 들고 좌석에 죽 앉아 있는 옆으로 나도 앉는다. 둘러보니 아는 얼굴이 하나도 없다. 같이 살고 있는 동에서 왔는데 전부 모르는 분들이다. 이럴 수가? 하면서 번호표를 뽑으니 191번이다. 벌써 백신을 맞고 다 가셨나?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번호를 부른다. 뒤로 가서 신분증을 내놓고 확인을 받으란다. 적어주는 예방접종내역확인서를 가지고 다음 코스로 또 다음으로 네 번을 거쳐서야 백신 주사를 맞았다.

주사를 맞으면 대개 알콜 솜으로 맞은 자리를 눌러주면서 문지르라고 하는데 이번에는 동그란 스티커를 붙여 주면서 손대지 말고 목욕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안내에 따라 앞으로 가서 몇 시까지 앉아서 기다리고 있으라 한다. 기다리는 동안 이상한 점이 나타나면 바로 얘기하라고 안내해 준다. 앞에는 이미 접종을 마친 분들이 조용히 앉아 있다. 한눈에 봐도 칠팔십 분은 되는 것 같다. 서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려도 아는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노인들은 밖에 나다니는 일이 드물어서 못 본 것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폐쇄적인 생활을 한 것인가. 아는 얼굴을 한 분도 못 만난 것은 아무래도 동네에 사는 분들과 ‘길들이기’를 하지 못하고 지내온 것이 분명한 것 같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나오는 얘기가 생각난다.

“‘길들인다’는 게 무슨 뜻이니?” 어린왕자가 여우에게 물었다. “그건 자칫하면 잊기 쉬운 거야.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관계를 맺는다니?” “그렇단다. 내게 있어서 너는 지금 수많은 소년들 중 하나일 뿐이야. 그러므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아. 그리고 너도 역시 날 필요로 하지 않을 거야. 너에게 있어서 나는 수많은 여우들 중 하나일 뿐이니까.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로 하게 된단다. 너는 나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거야. 나는 너에게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되고….”

“네가 날 길들여준다면 내 삶은 햇살처럼 밝아질 거야. 다른 모든 발소리와 구별되는 하나의 발소리를 갖게 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의 발소리는 나를 땅속으로 숨게 하지만, 너의 발소리는 마치 음악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거야. 자, 봐! 저기 밀밭 보이지? 나는 빵을 먹지 않아. 그러니까 나에게 밀은 소용없는 식물이야. 밀밭을 봐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 그건 얼마나 슬픈 일인지! 그런데 네 머리카락이 금빛이잖아. 네가 나를 길들여준다면 정말 멋질 거야. 황금빛 밀을 보면 네가 생각날 테니까. 그리고 나는 밀밭을 지나가는 바람 소리도 좋아하게 되겠지….”

너로 인해 네 발자국 소리는 물론, 아무 의미도 없던 황금빛 밀밭과 그 밀밭을 지나가는 바람소리마저 좋아하게 될 거라는 것 아닌가. 너의 발소리가 음악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낼 테고, 그렇게 네가 날 길들여준 덕에, 지난날 그토록 어둡고 지루하던 내 삶이 햇살처럼 밝아질 거라고 말한다.

우리는 참 많이 서로 모르고 살아간다. 시장에서, 버스 안에서, 또는 지하철에서 수많은 사람과 어깨를 부딪치면서 살고 있으면서도 나하고는 상관없는 사람들이다. 심지어 같은 아파트 한 라인에 살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모르는 사람들인 세상.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모르는 사람으로 살아야 할까요? 서로서로 길들이기를 하면서 살면 좋지 않을까요.

서정환 <신아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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