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모바일 기기가 전부라 할 수 있는 요즘 같은 세상 속에서 유교경전을 읽으며 옛것을 익히는 곳이 있다.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둔전리에 있는 ‘훈몽재’가 바로 그곳이다.
훈몽재(訓蒙齋)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1510∼1560)가 1548년(명종 3년)에 순창 점암촌 백방산자락에 지은 강학당이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훈몽재는 김인후 선생의 5대손인 자연당 김시서(1652∼1707)에 의해 1680년께 원래의 터 인근에 ’자연당‘이라는 이름으로 복원되었다. 하지만 6.25전쟁으로 전부 소실된 바 있다.
이후 순창군이 지난 2009년 중건을 마무리해 훈몽재, 자연당, 삼연정, 양정관 등 모두 4동으로 운영되다 2013년 교육생 편의시설인 양생당을 추가로 준공했다. 현재 부지 1만1천522㎡(3천485평)에 총 5동의 전통 한옥건물 713.46㎡(216평)가 자리 잡고 있다.
▶호남 유일의 동방 18현(賢)
하서 김인후는 동방 18현 가운데 한 명으로 정조임금이 문묘에 배향한 인물이다. 정조는 김인후를 문묘에 배향하는 것을 결정하면서 “호남의 공자가 나타났다”고 극찬했다.
동방 18현은 나라의 정신적 지주에 올라 문모에 종사 된 18명의 한국 유학자를 일컫는 데 호남에서는 하서 김인후가 유일하다. 당시 동방 18현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는 다음에서 알 수 있다. 즉 정승 10명이 대제학 1명에 미치지 못하고, 대제학 10명이 문묘의 현인 1명에 미치지 못한다.
▶인종 승하 후 처향에서 훈몽재를 짓다
김인후는 인종의 학문적 스승이자 절친으로 지내며 깊은 교감을 나눴다. 하지만 인종이 승하한 후 병을 이유로 사직해 처가인 순창으로 낙향했다. 1548년 순창 점안촌(현재 쌍치면 둔전리) 백방산자락에 강학당(講學堂)을 지었으니 바로 훈몽재다.
김인후가 이곳에 머물렀던 시기는 1548년부터 2년여 동안이지만 송강 정철 등이 훈몽재에서 수학하면서 호남 유학의 산실 역할을 톡톡히 했다.
훈몽재는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거치면서 두 번 소실되고 두 번 복원됐었다. 순창군은 6.25전쟁 이후 완전히 소실된 훈몽재 복원을 지난 2003년에 계획했다. 이후 김인후의 후손인 울산김씨 종중에서 훈몽재 옛터 부지를 순창군에 기부하는 등 장장 6년여에 걸쳐 2009년에 세 번째 복원을 완료했다.
▶오늘도 유교경전 읽는다
훈몽재에서는 한문학과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거주하면서 논어, 맹자 등 유학경전을 전문으로 공부하고 있다. 특히 방학 기간에는 전주대학교를 비롯한 원광대, 안동대, 상지대 등에서 100여명의 학생이 유학교육반에 참여 중이다.
유학교육반 마지막 단계에서는 전국 유학의 대가를 초청해 김인후 선생의 가르침과 도의, 절의, 문장의 세 정신을 계승하고자 강회도 연다. 훈몽재에 가면 아직도 김충호 산장 앞에서 글 읽는 학생이나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학암에 올라 실개천을 바라보며 글 읽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어느새 세상의 시름을 잊게 된다.
지난해부터 코로나19로 면적별 참석인원 제한으로 20명 한도에서 기간을 정해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라는 특별한 상황에서도 전국의 대학생들이 유교경전을 배우러 이곳을 찾는다.
▶송강 정철의 친필 남은 대학암
훈몽재 앞으로 흐르는 추령천에는 거북이 모양의 특별한 암석이 있다. 암석에는 대학암(大學巖)이라는 송강 정철의 친필이 음각 되어 있어 대학암이라 불린다. 대학암은 김인후와 정철이 대학을 논하던 곳.
정철은 이곳에서 대학을 통달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김인후가 후학을 지도하고자 세운 훈몽재에서 13살까지 공부하면서 틈틈이 대학암에 앉아 ’대학(大學)‘을 읽었다고 한다.
정철은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제1인자로 불리며 전남 담양에도 그의 자취가 남아 있다.
▶중국 유학생 증가로 어암관 신축
훈몽재는 지속적으로 교육생과 중국 유학생의 교류가 증가해 그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순창군이 다시 한 번 훈몽재의 외연을 확장하기로 했다. 지난 2019년부터 군에서는 김인후 선생의 후손인 김상렬 회장에게 훈몽재 뒤편 부지 4천834㎡를 기부채납 받아 2020년 11월부터 총사업비 40억원(군비 33억원, 도비 7억원)을 투입해 어암관(御巖館) 신축을 계획하고 실시설계 중이다.
어암관은 임진왜란 이후 소실된 훈몽재를 중건하면서 건립된 어암서원에서 명칭을 따왔으며 2022년 8월 준공을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 생가터
훈몽재에서 차량으로 10분 거리에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1887∼1964) 선생이 태어난 곳이 있다. 가인 선생은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북풍회 사건을 비롯해 각종 노동쟁의와 광복단 김상옥 사건, 6.10만세 사건 등을 변론하며 우리 민족의 인권을 지키는 일에 열정을 다했다.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의 감찰위원장을 비롯한 미 군정청이 사법부장을 지내다가 1948년 대한민국 건국과 함께 우리나라 초대 대법원장에 임명됐다. 대법원장 시설 우리나라 사법질서의 초석과 사법부 독립성을 다지는 일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1963년 건국공로훈장 독립장을 받기도 했다.
순창=우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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