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선이어폰이 가져다준 상념
무선이어폰이 가져다준 상념
  • 백순기 전주시설공단 이사장
  • 승인 2021.05.31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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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여행목적으로 제주도에 가기 위해 목포에서 여객선을 탔던 2019년 10월의 일이다. 이곳저곳 선실내부를 둘러보던 중, 먼발치에서 어떤 남성이 크게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가까이 가보니 한 중년 남성이 앞바다에 손가락질까지 하며 거친 언사를 서슴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욕하는 상대가 눈에 보이지 않는 점이었다.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나? 이런 생각에 그 사람의 손을 주시하니 그것도 아니었다. 누구한테 저렇게 심하게 욕을 하는 걸까? 불쾌하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해서 한참동안 걸음을 멈추고 들어보니 정말 가관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정신 이상자라고 생각을 했는데, 자세히 보니 귀에 무선이어폰을 끼고 전화를 하고 있었다. 아무리 주변에 사람이 없다 해도 공공장소에서 저렇게 큰소리로 저급한 욕을 하면 안 되지 않는가!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꼭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상식과 예의, 배려 등 인간의 덕목과 도리이다. 무선이어폰이 시중에 나온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지만, 필자가 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객선 욕설 이후 무의식중에 무선이어폰을 의식했는지, 비슷한 상황을 많이 목도하곤 했다. 길을 걷다 앞에서 혼자 접근하는 사람이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깔깔대며 다가오기도 한다. 물론 귀에는 무선이어폰이 끼어 있다. 밤에 운동을 하기 위해 천변을 걷다보면 깜짝 놀랄 때도 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홀로 중얼거리며 낯선 사람이 다가온다면 두렵기조차 하다.

기술의 발달은 인간을 편하게, 더 편리하게 이끌어 간다. 지금은 손안에 있는 휴대전화 한 대로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스마트폰 시대가 활짝 열려 있다. 무선이어폰도 대중화된 후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변화의 속도는 빨라지고, 우리 일상의 편리함도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참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문명의 이기(利器)는 편리함 이면에 불편을 초래한다. 빛이 강하면 어둠이 짙듯, 어느 한 사람이 강한 편리를 맛본다면 다른 한 사람은 불편을 느낄 수 있다. 무선이어폰만 봐도 그렇다. 세상이 변했으니 나도 변하고 우리 모두 변화를 수용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허공에 떠다니는 유령과 대화를 나누듯 상대방도 없이 혼자서 남이 알지 못하는 말을 읊조리는 일상이 자꾸 낯설기만 하다. 편리함도 좋지만 그것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은 생각해 볼 일이다. 대놓고 무선이어폰을 통해 조잡스런 대화를 이어가거나 대중 앞에서 상대방에게 심한 욕설을 하는 것은 보편적인 상식이나 인간의 예의에서 벗어나는 행동일 것이다.

나 혼자 전화하는데 남에게 무슨 피해를 주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듯하다. 도시에서야 흔한 일상이 되었다 해도 고령인구가 많은 농촌으로 가면 무선이어폰을 낀 채 홀로 알 수 없는 말을 토해내는 장면을 이해하지 않는다. 황당한 상황이라고 혀끝을 끌끌 차기도 한다. 무선이어폰이 없었던 수년 전만 해도 농촌 들녘을 혼자 지나가면서 무슨 말을 읊조린다면 정신병자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그, 사람과 가까이하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오히려 젊은이들 사이에선 무선이어폰을 끼고 한껏 멋을 부린 채 홀로 중얼거리는 풍경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생활과 삶을 유지하려는 것 같아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주변인에게 은연중에 피해를 주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뒤돌아 봐야 한다. 이웃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은 일상의 작은 배려에서 시작된다. 나만 좋다고 다른 사람의 미간을 찌푸리게 하는 행동은 절대 상식이 아니고, 예의도 아니다. 디지털 시대이지만 아날로그 시대의 생활상도 헤집어 보면 쓸 만한 것이 많다. 이런 현실에 사는 디지털 세대에게 인간사 보편적인 룰인 상식과 배려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무선이어폰’이란 기기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그 기기를 사용함에 있어 조금은 신중하게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달라는 것이다. 타인의 존중에서 나오는 배려는 진심과 통한다. 그리고 내가 먼저 하면 나에게 다시 돌아오는 게 바로 ‘배려’이다. 우리 모두 진심으로 타인을 배려하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백순기<전주시설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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