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사’들의 나라
‘율사’들의 나라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 변호사
  • 승인 2021.05.2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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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주 변호사
나영주 변호사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성품의 특성은 습관(ethos)의 결과물’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해 사람들이 행하는 모든 것은 습관에 기인한 것이며, 습관은 제2의 천성이라는 것이다.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행하는 일들이 그 사람의 성격을 형성한다는 말은 당연하다. 교육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올바른 습관을 형성해주는 일은, 그 사람의 성격을 만들고 그렇게 형성된 성격은 거꾸로 그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게 된다.

‘왜 그렇게 따지고 들어?’ 아내가 내게 종종 하는 말이다. 친구들도 말한다. ‘너 예전엔 안 그랬는데.’ 분쟁을 싫어하고 문제가 생겨도 대충(?) 넘어갔었는데 성격이 바뀌었단다. 대화가 논리적이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 원인과 결과가 분명해야 수긍이 된다. 직업인이 되고 나서는 좋아하던 문학작품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변주하면, ‘직업은 제2의 천성’이다. 법조계에 발을 들인지도 수년이 흘렀다. 상담과 서면 작성, 재판에 나가는 일들은 모두 논리와 이성의 영역이다. 성격이 바뀔 수밖에 없다.

습관이 반복적인 행동이고 반복적인 행동이 성격을 형성한다면, 우리 모두는 소설가 김훈의 표현대로 ‘밥벌이를 위해’ 지겹게도 같은 일을 반복하며 하루하루를 밀어낸다. ‘밥벌이’는 직업이다. 재밌는 사실은 4,50대 직장인에게 어떤 직업인의 전형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업 종사자는 금융업 종사자의 얼굴을, 농부는 농부의 얼굴을, 교수는 교수의 얼굴을 가진다. 물론 예외는 있겠으나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다 보니 ‘얼굴’을 보면 대충 어떤 일을 하는지 그들의 성격이 어떤지 느낌이 온다.

법조인도 마찬가지다. 율사(律士)들은 법률의 해석과 적용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법적극주의와 같은 예외적인 견해도 있으나, 대체로 분쟁이 발생한 이후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들이다. 창설적으로 무에서 유를 만드는 역할이 아니다. 이미 발생한 일들의 마무리를 해야 한다. 의미 있는 일이지만 한계가 있어 때론 아쉽다. 율사들은 법을 잘 알다 보니 행동이 조심스럽다. 감정표출을 자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 텔레비전에 나오는 변호사들을 보면 변호사답다는 생각이 든다. 재판이나 수사에서 보는 판사와 검사들도 편차는 있으나 정형화된 얼굴표정을 띤다.

문재인 대통령은 변호사 출신이다. 같은 변호사 출신인 노무현 전 대통령과 성격이 정반대긴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율사의 인상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변호사’ 같다. 모두 민주화 운동을 한 투사들이지만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 역대 대통령 혹은 유력 대통령 후보들은 군인이거나 직업정치인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체로 율사출신이었다. 21대 국회의원 가운데 율사 출신은 46명이나 된다.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상하원 출신들과 대통령도 법조인들이 많다.

다음 대통령 선거의 유력 여야 후보들이 모두 율사 출신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변호사 출신이고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검사출신이다. 두 사람의 삶의 궤적은 많이 다르지만 어쨌든 법조인 출신이다. 개발도상국에서 발전국가로 변모하면서 엘리트 계층 또한 군인에서 율사나 행정가로 바뀌는 일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율사 출신보다 신선한 직업을 가진 후보를 보고 싶기도 하다. 도널드 레이건은 영화배우 출신이었지만 미국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은 역대 대통령 중 하나다. 배우나 벤처 사업가 출신의 신선한 후보가 등장할 수 있을까.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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