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는 종다수(從多數) 의결이 제일 좋은 민주적 합의 방식이다
이 시대는 종다수(從多數) 의결이 제일 좋은 민주적 합의 방식이다
  • 소재호 전북예총 회장
  • 승인 2021.05.17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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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실행 방법으로 가장 옳고, 제일 합리적이라며 의사 합의를 밟아가는 방법으로 최선책이 과반수 참석에 과반수 이상 찬성으로 의안이 가결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불변의 진리(?)이다. 저 아득히 먼 그리스 시대부터 직접 민주주의의 광장인 아크로 폴리스에서 비롯되었다는 다수결 원칙은 지금도 그 타당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다양성의 시대,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에 과반수의 집합은 불가능할뿐더러 과반수를 넘는 선호가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의사 정족수가 겨우 과반을 넘고 다시 그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는 가결이라도 결국 합의는 4분의 1만 천성을 유도한 셈이다. 그 4분지 1이 전체를 대표하는 숫자가 아니지 않는가? 북한을 비롯 공산주의 국가나 전제군주국 일반에서 전체 참석, 만장일치란 예외없는 결과를 도출해 내는 사화라 하드라도 민의가 백퍼센트 통합된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은 우리는 주지하고 있는 바이다. 속내를 밖으로 표출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숫자놀음으로 민주주의 실현 운운은 해괴한 논법이다.

그런데 3인이 출마한 선출 행사에서 어느 누구도 한 사람이 과반수 득표를 얻지 못했을 경우 1위 득표자와 2위 득표자 두 사람만 내세워 결선 투표하는 모습을 종증 보게 되는데, 이는 합리적 의사 통합이란 미명하에 저질러진 매우 불합리한 민주주의 문법임을 필자는 주장하고 싶다. 그럴 경우 대개는 2위 자와 3위 자가 물밑 교섭을 통해 1위를 꺾고 2위 자가 당선되는 매우 역설적 결과를 도출하고 만다. 물밑 교섭이란 암수요 술수의 음험한 담합일 경우가 허다하다. 첫 번 투표 시 선택되지 못했던 후보(거부 의견이 더 많았던 후보)가 더 많이 선호된 후보를 꺾고 당선되지 않는가? 그러니 모순이라고 할 수밖에.

어차피 3인 출마의 경우 3분지 1씩만 지지자들 주문에 호응한 것이니 종다수 득표자를 그대로 당선자로 선언함이 옳다고 본다. 민주주의는 절차가 중요하다고 볼 때에도 이에 합당한 단순다수결 원칙이 최선일 터이다. 대통령 선거에서도 40% 득표로 당선되지 않던가? 결선 투표는 억울한 불복종 심리를 소속원에게 확대하여 심는 결과에 이른다. 봉합이 아니라 더욱 심화된 갈등의 변수를 낳는다.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레토란 사람이 주장한 내용이 있다. 이를 파레토 빕칙이라고 하는데, 개미의 집단에서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20%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20%를 제거하면 다시 새로운 20%가 출현하여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 80%는 언제나 빈둥거리며 논다는 것이다. 사람 사는 사회에도 이를 적용하여 경제 인구를 20%로 잡는 법칙이 바로 그것이다. 적극 참여자 적극 애착자 30%면 그 사회 운영은 바람직한 것일 터이다. 이성보다 일시적 충동이나 괴이한 변설에 선동된 다수가 모여 하는 정치를 중우정치(衆愚政治)라 이른다. 무관심한 자들 다수가 어리석은 합의롤 도출하며 이끄는 정치가 매우 어리석은 정치인 것이니 이를 경계해야 마땅할 것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란 주장은 벤담이란 사람의 공리주의 이론인데, 이도 또한 과반수를 상정한 이론이 아닐 것이다. 가능한 최대 다수, 가능한 최대 행복을 말하고 있다.

 

* 종다수(從多數) : 여러 의견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지지하는 의견을 따름.

 

소재호 <전북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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