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찔레꽃으로 피어날 때
봄이 찔레꽃으로 피어날 때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1.05.13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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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찔레꽃으로 피어났다. 찔레는 산과 들의 계곡이나 밭둑 길가에서 자라나는 떨기나무다. 노란 꽃창포와 다홍빛 해당화, 간드러진 유채꽃 아래 토키풀꽃이 봄으로 왔다.

전주천 찔레꽃은 강한 향기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낸다. 찔레의 어린싹은 나물로 먹기도 하고 새로 돋아나는 초록색의 부드러운 줄기는 껍질을 벗기고 먹으면 달착지근해서 배고픈 허기를 달래주는 고마운 나무였다. 꽃이 지면 찔레의 눈물방울이 알알이 맺혀 붉은 열매로 매달려 겨울을 보낸다. 겨우내 떨어지지 않아 산새들의 먹잇감이 되기도 한다.

찔레꽃 길을 걷다 보면 얄미운 사람의 뒷모습과 힘들도록 상처만 주는 독설이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억울할 정도로 분통이 차오르는 분노는 한꺼번에 튀어나와 내 생각을 혼란하게 만든다. 그러나 꽃은 치졸한 사람의 참회도 말없이 받아준다.

꽃에 얽힌 지극한 사랑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어떻게 사랑할 것인지, 어떤 삶을 살 것인지를 암시해준다. 그뿐이랴 외로운 사람에게는 기쁨을 주고 행복하게 사는 지혜가 담겨 있다고 오병훈은 『사람보다 아름다운 꽃 이야기』에서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내가 꽃이 되어도 좋다는 소망을 가져보며 봄을 즐긴다. 어버이날의 카네이션은 보낸 자녀들의 모습과 사랑이 물들어 있어 온종일 마음을 들뜨게 한다.

점점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지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부대끼고 있는 자녀가 안쓰럽다. 학교, 병원, 학원이 몰려 있어 어쩔 수 없이 서울에서 생활해야 하는 청년들. 수입을 몽땅 주거비용으로 지출해야 한다고 꿈을 꺾는 청년들에게 개천에서 용이 날 수도 있다는 희망을 말해도 고개를 좌우로 돌린다. 어서 빨리 꿈을 이루며 살도록 양극화 벼랑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에게 평등한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꿈을 꿀 수 없는 사회는 절망만 존재할 뿐이다.

어버이날 부모의 부자세습으로 출세한 사람들 이야기를 하다 보면 순간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느낌이 든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세상을 뒤흔든다는 불공정한 사회, 미래의 세대가 우리보다 잘사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

흙수저와 금수저를 분별하지 않는 사회, 계층 간의 사다리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열악한 환경에 처한 젊은이들은 더 빨리 양극화 절벽으로 추락할 위기임을 실감할 것이다. 혹독한 환경에서 자란 장미꽃이 가장 아름다운 향기를 품고 있듯, 붉고 싱싱한 장미꽃다발을 절망 속에서 꿈을 포기하려는 젊은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워싱턴 백악관 앞 일립스 광장 잔디밭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허리를 굽혔다. 민들레꽃 한 송이는 가장 친근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도록 대통령 마음을 움직였다. 배우자에게 꽃으로 사랑을 건네는 모습을 상상해 본 순간 내가 민들레꽃이었다. 미국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은 날, 부인을 위해서 잔디밭에 핀 노란 민들레꽃을 따고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한겨레(2021.5.1.) 꽃에 감동하는 사람은 모두 꽃처럼 아름다워 보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93회 아카데미영화제에서 <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수상소감은 꽃처럼 우아한 모습이었다. 한국 배우가 아카데미 연기상을 받은 건 한국 영화 102년 역사상 처음이다. 윤여정 배우가 입은 검은 드레스는 흑장미처럼 보였다. 특유의 재치 있는 수상소감으로 장미꽃의 품위를 더욱 높여 주지 않았던가. 모든 사물이 꽃처럼 보여질 때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 Omnibus Omnia를 직접 실천하셨으며 한 인간이 타인에게 베푸시며 꽃처럼 사신 한국교회의 큰 어르신인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다. 꽃이 떨어졌다. “항상 행복하세요”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선종하셨다. 형언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속에 주님께 보내드리며 왜 나는 남을 위해 나를 버리지 못하는가를 참회하는 순간 부끄러웠다.

해마다 찔레꽃은 어린 시절로 기억을 초대한다. 꽃은 생각을 윤택하게 만들며, 바라보는 이에게 마음의 평화를 선물하기 때문에 꽃으로 피어나는 봄을 좋아한다. 좋아하는 봄이 오래오래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이소애<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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