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농민, 농가, 농업인… 뭐가 다를까?
농부, 농민, 농가, 농업인… 뭐가 다를까?
  • 최재용 전라북도 농축산식품국장
  • 승인 2021.04.01 1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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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는 별 차이없이 혼용해 사용하는 용어들이지만, 업무를 하다보면 조금씩 구분해 쓰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뜻하는 농부, 농민, 농가, 농업인, 농업경영체도 그렇다. 이들 용어는 뭐가 다를까?

먼저 법에서 주로 쓰이는 용어는 농업인이다. 농업농촌 분야에서 근간이 되는 법이라 할 수 있는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이 있다. 이 법에 따른 농업인은 통상 300평 이상의 농지를 경영하거나 경작하는 사람, 농사지어 생산한 농산물 판매액이 연간 120만원 이상인 사람,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 영농법인이나 농업회사법인에 1년 이상 고용된 사람을 말한다. 농업인의 범주를 일반적인 생각보다 상당히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법에 명시된 농업인은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농민과는 심리적 거리가 있다. 우리는 통상 농촌마을에 살며서 마을공동체를 지켜나가고, 농사일에 전념하면서 여기서 나오는 소득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사람을 농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농민의 정확한 법적 요건은 명확하지 않다. 누구나 생각하는 진짜 농민을 구분해낼 합의된 기준도 현실적 제도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오랜 역사를 통해 민초로 살아온 보통의 일반 사람들이 농민이었다. 탐관오리로 인한 실정을 바로잡고 외세 침탈에 나라를 구하고자 일어섰던 동학혁명 속에 농민이 있다. 그런 연유에서일까? 왠지 농민이란 단어를 들으면 고단함과 가난함, 안쓰러움이 느껴진다.

비슷한 용어로 농부가 있다. 사전적 의미는 농사짓는 사람이다. 옛 이야기나 문학작품에도 많이 쓰였던 용어다. 요즘은 도시농부라는 신조어도 있다. 또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옛 어른들의 소중한 말씀에도 담겨 있다. 농사를 하나의 직업으로 바라보는 느낌이 강하게 묻어난다.

농가라는 용어도 있다. 농업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의 집이란 뜻이다. 흔히 농촌에 살며 함께 농사일을 하는 가족을 말한다. 농부, 농민, 농업인과 달리 실존하는 법적 주거지가 있고, 현장에서 쉽게 인지되고 구분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농가는 농촌마을 공동체의 기본단위로 여겨진다. 참고로 우리 도에는 2019년 기준 9만 5천 농가가 있다.

실제 행정에서는 농업경영체라는 용어를 많이 쓴다. 농업 관련 각종 보조사업이나 지원은 농업경영체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른 농업경영체를 대상으로 한다. 농업경영체 등록은 농가단위도 가능하고, 영농법인도 가능하다. 통상 농업경영체에는 경영주라 불리는 대표 농업인과 함께 일하는 배우자 등 가족이 포함된다. 한 농가에 속해있지만 농사일을 하는 가족 구성원들이 세대를 분리하여 따로따로 농업경영체에 등록하는 것도 가능하다. 2020년 말 기준으로 도내 농업경영체 수는 15만 9천 정도이다.

최근 농업경영체가 많이 늘고 있다. 일부에서는 투기목적의 농지 취득과 양도소득세 감면, 각종 직불금과 농민수당 혜택, 농협 조합원 확보 등 왜곡된 목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서 농촌마을에 실제 거주하는 인구가 늘지도 않고, 실질적인 농업생산에 기여하지도 못하면서 단순히 농업경영체 숫자만 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악용 사례가 농업경영체 제도의 무용론으로 전도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아직도 보완하고 개선시킬 점이 있을 뿐이다. 정부의 여러 가지 지원제도와 연동하여 참여 농업인들 스스로 실시간 현장의 정확한 정보를 담도록 유도하고 힘써야 할 것이다. 특히나 앞서 언급된 농가와 농업경영체를 잘 연결시키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진짜 농민과 농가를 보호하는 제도가 될 것이다.

이상으로 농업인, 농민, 농부, 농가, 농업경영체 등 우리가 별 구분없이 혼용해 사용하는 용어에 대해 간략히 알아봤다. 시대적 상황에 따라 주로 불리던 용어가 바뀌기도 하고,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우리 농업농촌에서 소중한 먹거리를 키우며 지역사회와 국가를 지키는 근간이 되어 왔다. 외형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본질적 관점에서 보면 변한 것도, 변할 것도 없는 것이다.

최재용<전라북도 농축산식품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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