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학자 신정일, 새로운 세상을 꿈꾼 천재 작가 허균을 만나다
문화사학자 신정일, 새로운 세상을 꿈꾼 천재 작가 허균을 만나다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12.0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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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사학자 신정일씨가 한 시대의 아웃사이더이자 불우한 천재 중의 천재 허균의 일대기를 쫓아 책으로 펴냈다.

 대중에게는 ‘홍길동전’을 쓴 사람 혹은 허난설헌의 동생 정도로만 알려진 그 허균이다. 역사의 긴 침묵 속으로 숨고만 그를 ‘천재 허균(상상출판·1만6,000원)’을 통해 현시대에 불러낸 것이다.

 조선 500년 역사상 역모사건에 몰려 비운의 생애를 마감했던 걸출했던 인물 중에서 허균은 기축옥사의 정여립과 함께 신원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상을 개혁하려 했으나 세상의 날선 칼날에 그 꿈을 펼치지 못한 채 비운의 생을 마감한 허균에 대한 진짜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것은 문화사학자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또한 지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난 허균이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는 당대에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불온한’ 생각을 갖게 된 까닭도 풀어야할 숙제 같았다.

 그렇게 뒤쫓게 된 허균의 삶. 허균은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기억력도 뛰어나 한번 본 것은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뛰어난 집안의 자제가 어울려 지냈던 사람들은 뜻밖에도 서얼 출신이거나 천민 출신이었다. 권필과 조위한 같은 천재적인 시인과 서예가 한석봉, 화가 이정과 이징, 천민 출신 의병장인 유희경, 서얼 출신 이재영과 서양갑, 심우영 그리고 승려인 해안과 옥준, 기생인 이매창과 무옥 춘섬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이들이다. 대부분 불우한 생을 살았기 때문에 그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사람들이다.

 사대부들은 허균의 행동을 기행이라 여겨 비난했으나 허균은 당대의 모순과 불합리를 인지해 이를 바꾸고 싶어 했다. 그리고 이러한 뜻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으로 이어졌다. 허균이 살았던 시대는 조선 역사상 가장 불확실한 시대였다. 당시 조선 벼슬아치의 부패는 극에 달해 있었다.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뇌물을 받는 것도 당연시되었던 떼디. 허균이 자신의 개혁사상을 가장 많이 표출한 글은 바로 ‘호민론’이다. 허균은 이 글에서 신분 차별이 없는 새로운 이상향을 꿈꾸었다.

 허균은 조선 역사상 가장 가식 없이 솔직했던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시대를 앞서가는 사상으로 불화를 빚으며, 당시 세상 사람들로부터 수많은 모함과 비난을 들어야 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 김시양은 “문장은 남이 따를 수 없이 한 시대에 뛰어났으나 사람이 경박하고 조심스럽지 못하다”고 그를 평했다. 허균의 사람됨은 나쁘게 평했지만 그의 시와 문장만큼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연유에서 인지 모르지만 허균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여러 갈래다.

 저자는 “역사는 항상 승자의 기록이었고, 승자에 의해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버린 패자는 세상의 모든 허물을 뒤집어쓴 채 구천을 떠돌고 있다”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느 새 400여 년이 지났지만 그의 문장과 사상은 오늘날에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의기소침해진 채 세상이 너무 답답하고 쓸쓸하다고 느낄 때 허균이 그런 나를 깨운다”고 밝혔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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