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의 중국어표기 泡菜(파오차이)에 대한 유감(有感)
김치의 중국어표기 泡菜(파오차이)에 대한 유감(有感)
  • 양병선 전주대학교 (전)부총장/영미언어문화학과 교수
  • 승인 2020.12.0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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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씨가 쌀쌀해지고 영하권으로 내려가면서 COVID-19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어 우리지역에도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가 실시되고 있다. 지역감염을 막기 위하여 도민들 대부분 마스크쓰기는 일상생활이 된지 오래이며 각종 행사나 모임 참가 자제, 외출 자제, 온라인 수업 확대 등으로 인해 우울한 연말을 맞이하고 있다. 우울한 가운데서도 1년 중 식탁이 풍요로우며 즐거운 때는 요즈음이 아닐까 생각한다. 초겨울이 되면 우리나라의 모든 가정이 연중행사로 하는 것이 바로 김장김치를 담그는 것이며 그 김장김치를 이웃과 서로 나누는 것이 우리의 일상생활이 된지 오래다.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 앉아 이웃끼리 나눈 김장김치를 먹으면서 이 김치는 누구네 것이며, 맛은 어떻고, 젓갈이 더 들어있네, 마늘이 들어 있네, 깨소금을 쳐서 먹으면 더 맛이 있다는 김장김치의 평 뿐만아니라, 그 집의 다양한 가정사에 대해 신나서 떠들어대는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먹는 저녁식사는 이 시기에만 느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시간임이 틀림없다. 이런 우리의 김치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된 우리의 고유 음식이며 다른 나라에서는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때에 우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언론 보도가 있으니 바로 중국의 관영매체 환구시보(環球時報)의 김치에 관련된 기사 때문이다. 지난 11월 28일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중국의 절임배추인 泡菜(파오차이) 국제표준이 ISO에 의해 정해졌으며 한국산 김치도 파오차이의 일종으로 파오차이의 국제표준이 김치의 국제표준이라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런 기사에 대한 대부분의 한국 언론기사의 논조는 우려와 분노가 대부분이며 김치와 泡菜(파오차이)는 근본부터 다른 음식이라는 지적이다. 또한 김치의 국제표준은 이미 2001년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식량농업기구(FAO)가 공동 운영하며 180여 회원국이 참여하여 국제 식품 규격, 지침, 실행규범 등을 개발하는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코덱스)로부터 국제식품규격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한복에 우리 땅까지 자기네 역사 속에 집어넣으려고 역사를 왜곡한 ‘동북공정’ ‘한복공정’에 이어 우리 고유 식품까지 넘보는 철면피 나라”(20년 12월 2일자 전북도민일보 모악산)라는 지적도 눈에 띈다.

 하지만 어느 언론에서도 김치에 대한 우리의 언어정책의 잘못을 지적하는 곳은 찾아보기 어렵다. 김치는 kimchi로 국제표준화가 된지 이미 오래다. 따라서 김치의 영문표기는 kimchi로 표기하며 이미 많은 영어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김치’는 고유명사이기 때문에 영문표기는 번역하지 않고 음역(音譯)하여 kimchi로 표기한다. kimchi는 전 세계가 인정하고 있는 우리 고유 한식의 명칭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의 공공언어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소속 국립국어원은 20년 7월 15일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을 새로이 제정하면서 김치의 중국어 표기를 泡菜(파오차이)로 예시하고 있다. 심지어 국내·외 식품산업에서 한식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발전시켜 한식의 해외확산 추구 등의 핵심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 소속 한식진흥원은 2017년 12월 펴낸 「한식메뉴외국어표기 길라잡이 700」의 일러두기에서 절임음식인 ‘泡菜(파오차이)’는 발효음식인 우리나라 김치의 번역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으나 중국 현지에서 통용되며 중국인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표기이기에 김치의 중국어 번역은 泡菜(파오차이)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김치’는 당연히 ‘泡菜(파오차이)’의 일종이라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泡菜(파오차이)가 김치의 국제표준이라는 주장에 대해 중국의 한식공정을 논하기에 앞서 우리의 언어정책에 대해 반성해 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치’의 국제표준 명칭은 kimchi이다. 따라서 영어뿐 아니라 중국어의 표기 또한 우리의 고유어인 김치를 음역(音譯) 하여야 한다. ‘泡菜(파오차이)’ 대신 剋母?(k?i m? qi)처럼 표기하여야 한다. 이는 ‘서울’의 중국어 표기를 한자어인 ‘漢城(han cheng 한청)’ 대신 ‘首? (sh?u ?r 서울)’로 표기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국어연구원과 한식진흥원은 한식의 세계화를 위해 김치뿐 아니라 불고기, 비빔밥, 김밥, 김치김밥 등의 영문표기도 영문번역을 하지 않고 음역을 하여 bulgogi, bibimbap, gimbap, kimchi gimbap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는 이들 한식명이 고유명사임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표기이다. 하지만 중국어표기는 음역대신 불고기 ?牛肉(k?o niu rou, 카오니우러우), 비빔밥 拌?(ban fan, 반판), 김밥 紫菜卷?(z? cai ju?n fan, 쯔차이 주안판), 김치김밥 泡菜紫菜卷?(pao cai z? cai ju?n fan 파오차이 쯔차이 주안판)으로 중국어 번역을 하고 있다. 이들의 중국어 표기 또한, 영어와 마찬가지로, 번역하는 대신 중국어 음역을 하여야 마땅하다. 그래야 한식의 세계화가 가능할 것이며 중국의 ‘한식공정’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언어정책을 총괄하는 국어연구원과 한식의 세계화를 주도하는 한식진흥원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한 때이다.

 

 양병선 전주대학교 (전)부총장/영미언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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