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억, 세월 그 세월
회억, 세월 그 세월
  • 은호기 재미 시사평론가
  • 승인 2020.09.2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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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때나, 그 어느 곳에서든 마찬가지다. 어머니는 사랑, 포근함, 그리움이다.

 인간은 엄마라는 말로 입을 떼면서 세상을 알아간다. 그래서일 터이니, 어머니라는 발음은 어느 언어에서도 부드럽고 쉽기 마련이다.

 김정일의 아버님(김숙봉 1915-1984)은 작은 편이었으나 준수하였다. 말수가 적고 성실하였다. 방앗간(정미소)을 운영하셨다. 덕분에 그 어려운 때에도 정일은 가난을 모르고 자랐다. 외삼촌(문장완 1930-2016)이 6.25전장에서 상이군인이 되어 실의를 안고 돌아왔을 때, 정일의 아버님은 삶의 터전을 마련해주기도 하였다.

 그의 어머님(문순임 1921-2020)도 몸집이 작으시고 말수는 적었지만 아버님과 달리 통이 크셔서 매사에 적극적이었다는 말이다. 마땅히 큰아들인 정일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였다. 천재라는 입소문이 자자했던 그의 동생이 저수지에서 어린 나이(7세)에 목숨을 잃은 터여서 더욱 그랬다. 눈부시게 흰 무명베 폭이 펄럭이던 넋풀이굿판에서 기진해있던 어머님의 모습이 고향의 그림 속에서 지금도 뚜렷하다.

 어머님은, 공부는 잘하지만 가난했던 반장(당시 급장)을 정일이 집에서 함께 공부하도록 배려하셨다. 그때로써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나는 고부에서 정읍으로 옮겨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생활했다. 정일이는 달랐다. 어머니는 하숙집에 보내지 않고 집안이 번듯한 집에 맡겼다. 공부도 중요하거니와 행동거지 또한 조신해야 한다는 교육적 바람이었다. 나는 그 집, 양주사 집(양영신: 정읍인물지 p401 1990,정읍문화원)을 놀이터 마냥 자주 다녔다. 큰아들은 식민통치 시절, 제일 좋다는 조선인중학교(전주고보)를 마다하고 일본인중학교를 다녔다. 구태여 일본인중학교를 고집한 그의 부모의 뜻을 알만 하다. 그는 후에 나의 고등학교 영어선생님이었으며, 전쟁이 진정되자 대학교 법학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대단한 척, 도도한 그 집 분위기에 짜증 났다. 분망하고 장난이 심했던 나는 그 집 숨 막히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친구에게 엇나가길 부추기기 일쑤였다. 그러나 정일은 착하기만 했다. 나의 회억(回憶)은 여기에서 일단 멈춰진다.

 정일은 고향에서 자랑스러운 대학졸업생이 되었다. 사회생활은 순탄했다.

 이것저것 일도 많이 했다. 열정적이었다. 그의 성실한 삶은 동생들의 모범이 되었으며, 동생들 또한 형을 본받았으리라. 그에게 아우, 누이가 여섯이나 있다는, 이 넉넉한 집안사정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들 형제들의 신실한 삶은 효성으로 모아졌고, 효성과 보람 속에서 2019정읍기네스 인물로 선정되시고 어머님은 백수를 누렸으니, 환갑이면 마당에 채알(차일)치고 큰 잔치를 벌였던 시절에 비하면 참으로 부러운 삶이다. 축복이다. 그리고 고향을 지키시면서 고향 일에 헌신적이었던 삶, 고맙고 자랑할 만하다.

정일이 어머니의 무탈함과 장수를 전해들을 때면 나는 차준진을 떠올린다. 그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때 세상을 뜨셨다. 어린 준진은 헐렁한 상복을 입고 상주 노릇을 하였다. 그런 모습이 삼베옷깃의 감촉처럼 싫었고, 지금도 손가락의 생채기처럼 아려온다.

 이제 우리는 여든을 넘겼다. 모습도 많이 달라져 있다. 어쩌다 전송되어오는 동창들의 사진 속에서 생판 낯선 얼굴이 다가올 때면 당혹스럽다. 나에겐 더욱 그렇다. 고국을 떠나 온 지 오십년, 고향을 떠나 온 지는 훨씬 전이다. 고향이 아득하다. 고향 사람들의 모습이 가물가물하다. 그 틈새에 세월, 그 세월이 그렇게 흘러갔다. 계량할 수 없는 남은 시간, 언젠가는 우리도 어머님 곁으로 돌아가야 할 터이니.

 그렇다네, 어제저녁 술잔을 마주하던 그 친구가 떠나갔다네. 그네뿐이랴. 이곳저곳의 이이 저이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인연의 자락을 놓고 떠나가고 있다네. 그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내 손길에서도 힘이 빠져가고 있다네. 책상 서랍 구석을 새삼 챙기고 책장 빈 곳을 더듬고 옷걸이 방 선반을 정리하고 있는 쇠한 손길이 천연덕스럽다네. 바랜 사진 속의 얼굴들이 나를 향해 낯설게 웃고 있다네. 꽃상여 처마 끝처럼 알록달록 태를 두른 항공 엽서의 손 글씨 미라 되어 공옥진 공옥진: 장애인춤의 대가의 춤을 추고 있네 눈물방울이 미라 위에 번지네. 성글은 머리카락 사이에서 바람이 일고 있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올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 나도 울었다. 어머님 손길을 찾아갈 때엔 참새들 조잘대는 아침 햇살을 타고 가려네 기러기떼 짜안한 저녁노을은 두고 가려네. 남은 자들은 시를 써야 할 터이니.
  

 은호기 <재미 시사평론가/전 범민족대회 북미주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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