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6일 우정 마을 나들이
8월 26일 우정 마을 나들이
  • 진영란 장승초 교사
  • 승인 2020.09.17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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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태풍 온대요. 우리 집에 안 가도 괜찮은 거예요?”

 학교에 오자마자 집에 갈 걱정이다. 초속 40미터의 강풍을 동반한 태풍 바비의 상륙 소식은 1학년 아이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그래? 태풍 오기 전에는 날씨가 어떤지 우리 함께 나가서 살펴볼까?”

 태풍 덕분에 선선한 바람도 불고, 햇볕도 강하지 않아서 나들이하기 딱 좋은 날씨다. 집에 가야한다던 걱정은 온데간데 없고, 아이들 마음은 이미 교실문을 나서고 있었다.

 

 “우정마을에 은송이네 집을 짓고 있는 거 알아? 은송이네 집이 얼마나 지어졌는지도 보고, 우정마을 정자에서 시원한 샤베트도 먹고 오자. 가기 전에 일단은 텃밭에 모여서 어제 우리가 만들다 만 당근밭이 어떻게 생겼는지 볼까?”우리들의 1차 집결지는 텃밭이다. 우리가 만들다 만 당근밭은 이랑과 고랑이 정갈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와! 밭이 만들어졌네?”서툰 솜씨로 괭이질을 하다가 날이 더워 마무리하지 못한 밭이 변화된 모습에 놀라는 눈치다.

 “4학년 형님들 고생했겠다. 너희들도 형님 되면 이렇게 일 잘 할거지?” 4년차 농사꾼들이 구슬땀을 흘려 만든 밭을 감상하다가 해바라기랑 키도 쟀다가 5학년 밭에서 당근이랑 배추도 찾아보았다.

 “선생님! 여기는 왜 온 거예요? 그만 돌아가면 안 돼요?”윤우의 외침이 들려온다.

 “야! 아직 출발도 안 했는데 벌써 돌아가면 어떡하냐?”영윤이가 핀잔을 주어도, 윤우는 나들이가 영 어색하고 힘든 모양이다.

 “윤우는 밖에 나온 것이 힘들 거야. 윤우야, 선생님이 이렇게 윤우를 보호해줄게. 걱정하지 말고 한번 가 보자. 선생님이 시원한 음료수도 얼려왔거든. 빨리 우정마을까지 가서 쉬면 어떨까?”“아니, 싫다고요! 왜 그래야 해요? 그만 돌아가요!”윤우의 바깥공포증을 어떻게 극복할까 고민을 하는 중에도 아이들은 벼이삭을 찾아내고, 잠자리를 발견하고, 길에 깔린 개구리를 관찰한다.

 “선생님! 여기서 우정마을까지 얼마나 더 가야해요?”윤우가 항의하듯이 묻는다.

 “오! 좋은 질문이네? 우정마을까지 몇 발자국이나 될 것 같아?”200, 300, 500, 1000 다양한 어림들이 쏟아져 나온다.

 “우리 누가 맞는지 세면서 걸어볼까?”윤우, 영윤이랑 발맞추면서 숫자를 세어 나갔다. 100단위는 내가 세고, 윤우는 10씩 세어나갔다. 그렇게 우리 논에서 우정마을까지 1000발자국을 걸었다. 돌아가자던 윤우는 숫자세기에 집중을 하면서 우정마을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선생님, 제가 비가 많이 오고 나서 오동나무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서 와봤거든요? 근데 오동나무가 없어졌어요!”우리가 관찰하던 오동나무가 없어져서 아쉬웠는지 상빈이가 재잘댄다. 그러고보니 냇가가 휑하다. 지난 폭우에 쓸려나갔는지, 하천을 정비하면서 베어버린 건지 오동나무가 보이지 않는다.

 

 우정마을 정자에서 은송이네 집도 보고, 무궁화꽃도 보고, 대추나무에 매달린 파란 대추도 보았다. 이장님이 주무시고 계셔서 인사는 못 드리고, 윤영순 할아버지랑, 염소할머니께만 인사를 드렸다.

 “선생님! 더워요. 선생님 집에 가고 싶어요.”

 윤우의 제안을 거절할 수가 없다. 우리 집에 가서 포도한모금 샤베트를 먹다가

 “우정마을은 왜 우정마을이야?”상빈이가 효주에게 묻는다.

 “친구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고 우정마을이래.”멋진 대답이다. 우정마을 표지석에 쓰여있는 마을 유래를 살펴볼 일이 생겼다.

 

 마을 입구에 있는 표지석으로 보고, 우정마을이 소가 물을 먹는 모양으로 생겨서 ‘우정’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과 마을 정자를 지키고 있는 500년 넘은 느티나무를 송씨할아버지가 심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보았다.

 “선생님! 저기에 염소 있지요? 우리 찍어서 밴드에 올렸었는데...”효주가 염소농장을 가리킨다.

 ‘아, 맞다. 우정마을에는 야고베염소농장이 있었어. 왜 그생각을 못했지?’

 “얘들아, 우리 염소보러 갈래? 선생님이 효주랑 찍은 영상 보여줬었지?”말을 채 마치지도 않았는데 아이들이 염소농장으로 달려간다.

 덥다고 빨리 돌아가자고 칭얼대던 아이들이 방언이 터진 것처럼 재잘댄다.

 

 “새끼 염소네!!”

 “염소 색이 다 달라요!”

 “암컷이에요? 수컷이에요?”

 “저 염소는 왜 커요?”

 “저 아이는 왜 젖을 안 먹어요?”

 쏟아지는 질문들이 놀라울 따름이다. 한참을 자기들끼리 질문을 하고 답을 하다가

 “선생님, 우리 내일모레 여기 또 와 봐요. 태풍 지나고요. 염소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요.”

  다음 방문 날짜까지 선정한다.

 돌아가는 길은 발걸음이 참으로 가볍다. 방금 본 염소 이야기, 우정마을 송씨할아버지 이야기로 가득하게 때문이다.

 

 돌아와서도 아이들은 염소 이야기를 멈출 줄 모른다. 염소 이야기로 가득한 글똥을 누고, 염소 4만원이라는 노래도 찾아서 불렀다.

 

 “노래가 참 좋네요!”

 아이들은 오늘 온 마음으로 우정마을의 염소와 접속했을 것이다.

 ‘날이 너무 더워서, 마을 사람들이 친절하지 않아서, 마을 소풍을 가면 대접을 받으니까’ 우정마을에 나가지 않을 이유만을 찾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나들이는 대성공이었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배움의 주체로 거듭나는 우리 아이들을 보면서 마을 나들이를 게을리 한 자신을 반성한다.

 등교가 늦어지면서 시원한 봄날에 마을 나들이를 하지 못하고 미뤄뒀었는데,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서 나들이하기 딱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언제 온라인 학습으로 전환될지 모르니 아이들이 학교에 나올 수 있을 때 부지런히 나들이를 해야겠다.

진영란 장승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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