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잘알’들의 세상
‘법잘알’들의 세상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 승인 2020.09.07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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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님. 저도 알아보니 이러하다는데, 사실인가요?” 요즘엔 상담하러 온 의뢰인들이 변호사보다 ‘법잘알’인 경우가 많다. ‘~잘알’이란 말 그대로 무언가를 잘 아는 사람을 뜻하는 인터넷 조어다. 법학을 전공하지도,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들도 요샌 법에 대해 잘 안다. “선생님. 잘 아시네요.” “인터넷에서 찾아봤어요. 얼마전에 대법원 판례도 바뀌었더군요.” 살짝 긴장된다. 물론 거기까지다. 하나의 판례가 세상만사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면 필자는 직업을 잃을 것이다. 경우가 제각각이고 증거관계가 저마다 다르니 필자가 먹고살 수 있다. 제아무리 ‘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기고 ‘빅데이터’가 모든 정보를 수집하여 체계화하여도,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일을 포섭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수십년안에 사라지는 직업의 윗자리에 변호사가 있어도 별로 걱정이 되지 않는 이유다.

 인터넷은 민주주의의 ‘아고라’다. 레거시 미디어를 통하지 않고서도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된 것은 90년대 등장한 인터넷 때문이다. 비단 의견뿐만이 아니다. ‘~잘알’들이 넘쳐난다. 익명성의 공간은 자격을 확인할 수 없다. 물론 공인된 전문가들의 답변을 볼 수는 있지만, 전문가일수록 확답을 내리지 않는다. 당장 인터넷의 ‘지식인’이나, 전문가 플랫폼 등에 법적 상담글을 올리고 확인해 보면 안다. 명쾌함과 오류 가능성은 비례한다. 진짜 ‘~잘알’일수록 조심스럽고 결론에 있어 주저한다. 모를수록 독단에 빠진다.

 그럼에도 인터넷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듣고 싶어하는 의견만을 취합하고 그것들을 토대로 결론을 내린다. 확증편향의 오류다. 진리는 다수결의 법칙으로 정해지지 않음에도 전통적 권위가 내린 결론에 대하여 날선 비판을 한다. 최근 유력정치인의 딸이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2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받았고, 피고인과 검찰 모두 상고를 포기하여 형이 확정되었다. 일부에선 검찰의 상고포기를 비판하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제기했다. 형사재판에서 상고 사유는 양형부당과 법리오해로 나뉘고 형사소송법상 10년이상의 징역이나 금고가 선고된 사건에 한하여 양형부당을 이유로 상고할 수 있다. 결국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된 위 사건은 양형부당으로 상고할 수 없고, 피고인이 죄를 인정하였기 때문에 법리오해로 딱히 상고할 수도 없어 검찰의 입장에선 상고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검찰이 직무유기를 하였다고 비판하는 것은 ‘법알못’(‘~잘알’의 반대의미로, ‘문외한’을 뜻하는 조어)의 관점이다.

 한편 지난 8월 14일 8·15 광화문 집회의 옥외집회 금지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 준 판사에 대한 비난여론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왔다. 법원은 이례적으로 당시 제출된 증거 등 사실관계를 놓고 볼 때 집회의 자유를 서울시가 과도하게 침해했고 감염병 확산 우려가 명백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변명(?)했다. 위 유력정치인의 딸 사건처럼 법원의 판결에 비판하는 시민들을 ‘법알못’이라 단정하고 무시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인터넷이란 너른 공간에서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지식 접근성의 장벽이 무너져가고 있는 현실에서 위와 같은 일들을 단지 법을 모르는 사람들의 해프닝으로 치부하고 무시할 수 있을까. 전통적으로 신학과 법학, 의학의 전문직은 ‘learned profession’이라 불린다. 단순히 ‘법잘알’이 명판결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존경받는 법관 러니드 핸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죽을 병을 앓는 것 이외에 재판하는 일처럼 무서운 일이 없다.” ‘법잘알’들이 넘치는 세상에서 법조인으로 살아가는 일처럼 무서운 일이 없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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