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의 바람, 더 큰 희망의 바람이 불기를
9월의 바람, 더 큰 희망의 바람이 불기를
  • 정영신 전북소설가협회 회장
  • 승인 2020.09.06 15: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잎새에 이는 바람에도/나는 괴로워했다./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인의 대표작인 <서시>이다. 이 시는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서두에 붙여진 작품으로 ‘바람’이라는 핵심 단어가 두 번 등장한다. 이 ‘바람’에는 특별히 비합리적이고 비인륜적이고 합당하지 못한, 지극히 세속적인 세상과는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는, 시인의 메시지가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바람이 분다. 9월의 바람이다. 필리핀의 한 나무이름에서 명명된 9호 태풍 마이삭이 제주도와 경상남도 해안지방을 무섭게 휩쓸고 지나갔다. 다리가 끊기고, 나무가 뿌리째 나뒹굴고, 많은 농작물이 비바람에 맞아 쓰러졌다. 그런데 그 마이삭의 잔바람이 아직 가시지도 않은 상황에서 다시 또 ‘바람의 신’이라는 10호 태풍 ‘하이선’이 북상하고 있다.

 바람이 분다. 때늦은 큰바람이 센 비까지 몰고 북으로 달려가고 있다. 태풍의 거친흔적이 여기저기 산자락 아래 엎어진 나무 등걸로 남아 있다. 산등성이에 줄 늘어 선 노송들이, 철없이 겨우 버티고 선 젖먹이 아기송들이, 심하게 흔들린다. 마이삭이 스쳐 가고 10호 태풍 하이선이 달려오고 있다. 9월이 심하게 휘청이고 있다. 큰비바람에, 코로나19 재확산에,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그 큰 바람만큼이나 여기저기 많은 것이 힘들게 흔들리고 있다. 식당, 노래방, 실내 스포츠센터, 공연이 주 수업인 음악인들 연예인들, 스포츠 선수들, 모두 저 태풍보다도 더 거센 아직은 백신도 개발되지 않은 코로나19라는 전무후무한 바이러스 큰 태풍이 서민들을 풍전등화의 두려움 속에서 떨게 하고 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으면 버스를 탈 수 없고, 지하철도 탈 수 없고, 어느 공간에도 출입할 수가 없다. 다행히 매일 신규 확진자가 300여 명에서 100명대로 감소하고 있지만, 부모의 돌봄을 받지 못하는 소년소녀 가장과 노약자, 독거노인 등, 이 코로나19라는 큰 태풍에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쓰러져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에, 10인 이상 집합금지에, 각종 단체 경연 금지에, 식당과 유흥업소, 각종 행사 규제에, 학생들의 대면 수업의 비대면 온라인 수업 실시 명령 등, 마치 SF 영화의 주인공이 된 듯,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 너무 낯설다.

 바람이 분다. 큰 바람, 태풍 하이선이 몰려온다. 바람을 맞아 본다. 거리의 가로수와 가로등마저 뒤흔드는 억센 힘이지만 이 답답한 시국에 오히려 그 바람이 시원하다. 며칠 전 일 년의 반을 참치잡이 원양어선 안에서 보냈다는 노선장이 태풍에 휩쓸려가는 제주도와 부산 해안지역의 피해 장면을 보더니, 자신이 망망대해에서 태풍을 만난 듯 그 순간을 회상하며 말문을 열었다. “바다 사내들은 큰바람이 제일 무섭다. 그런데 때가 되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자연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태풍도 마찬가지다. 큰 바다로 나서면 우리는 이 친구들을 1년에 21회에서 24회 정도 만난다. 거의 8월 안에 다 만난다. 그런데 이제 9호다. 앞으로 15회 정도는 이 친구들이 더 달려올 것이다. 이제 바삐 연달아 올 것이다. 자연은 그들의 법칙을 거스르지 않는다. 순리대로 행한다.”

 지인인 그 노선장은 다시 참치를 찾아 바다로 떠났다. 그리고 그 노선장의 말대로 바빠진 태풍들이 연이어서 몰려오고 있다. 이번에는 10호 태풍 하이선이다. ‘바다의 신’이다. 태풍의 영향일까. 올여름이 언제 인사도 없이 급히 떠났다. 입추도 지났다. 칠월 칠석도 지났고. 백로가 찾아왔다. 코로나19의 재확산으로 국내 전역에 긴장감이 돌아서인지 몸과 마음이 차다.

 다시 바람이 분다. 윤동주의 <서시>에 나오는 그 바람은 결코 만나면 안 되는 악연으로 찾아온 바람이다. 그러나 이 바람은 다 부정적인 존재가 아니다. 바람은 그 노선장의 원양어선을 위협하는 두려운 존재요, 논밭의 농작물을 쓰러지게 하고, 거리의 시설물들을 부수고, 날리게 하지만, 적당한 작은 바람은 과실나무의 열매를 맺게 하고, 큰 바닷물을 뒤흔들어 자연정화를 시키고, 지구 곳곳에 풍요를 몰고 찾아오는 신성한 하늘의 소리이다.

 바람이 분다. 9월의 바람이다. 이 9월에는 좋은 바람, 더 큰 희망의 바람이 불어서, 전 세계 인류의 적인 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다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정영신<전북소설가협회 회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