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서울로 가야만 하는 이유
목숨 걸고 서울로 가야만 하는 이유
  • 이소애 시인
  • 승인 2020.09.01 17: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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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자욱한 이른 새벽이다. 손가락만 한 빗줄기가 고속도로 주행선을 흐릿흐릿 지우는 심술까지 부려 자칫 사고로 이어질 것 같았다.

 순간 급하게 움직이는 와이퍼에 질문을 던져보았다. 물론 와이퍼는 좌우로 빗물을 씻을 뿐 대답은 내가 하고 있었다.

  “왜 나는 고령의 만성 기저질환자를 모시고 서울로 달려야 하는가?”

  코로나19로 이미 예약했던 수술 일자를 연기하면서까지 수술을 해야 하는가? 로또에 당선된 것처럼 생명에 대한 희망은 뭉게구름처럼 부풀어 올랐다. 생의 동아줄을 잡아당겨 본다. 서울 소재 병원에서 수술 일정이 잡혀 올라가는 환자에겐 마치 신의 부르심 같은 희망이 잠재하고 있었다. 목마른 갈구, 절대자에게 기원하는 기도였다.

  라디오 뉴스에서 전공의협의회 등 의사단체들이 집단행동을 시작한다는 뉴스가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 별을 따듯 수술 일자를 겨우 통보받았는데 또 변경될까 봐 걱정했다. 병원에서는 “확정입니다.”라고 확답을 해주는 대신 입원 당일에 다시 연락해 주겠다는 말만 했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힘을 과시하는 의사들의 엘리트주의가 싫증 났다. 단 1분(?)의 담당 의사와의 진료를 위하여 환자는 얼마나 고심을 했는가. 환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일어나 옆방 문을 밀고 나가는 의사 뒷모습에서 환자는 얼마나 절망감을 느꼈던가. 환자의 병세를 총알 같이 말하기 위해 메모를 해서 읽어보려 해도 소리는 의사의 시선 밖에서 맴돌지 않았던가.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두려워하는 세상, 서로 눈빛이 마주칠 때면 하나같이 눈살을 찌푸린다. 사람은 누구와도 섞일 수 없고 섞이기 싫어하는 세상이다. 불안과 의심과 분노가 부글부글 끌어대는 소리가 자동차 소음을 더 크게 만든다.

  휴대전화기를 꺼내어 ‘제네바 선언의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읽어보았다. 그렇군!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에 나의 일생을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서약한다.”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들으면서 차창 밖 뒤로 가는 숲으로 마음을 옮겼다.

  “왜 서울로 가고 있는가?”

  의사는 환자와의 관계에서 엄청난 우월적인 위치에 있다. 마치 생명을 주관하는 신의 존재처럼 말이다.

  지역 의료 격차 해소를 위하고 공공의대 설립, 의대 정원 확대 등 4대 악 의료정책 때문에 강경 투쟁을 한다지만 환자 가족인 나의 시선은 노인 기저질환자가 힘들게 서울 병원으로 가야 하는 의료 환경 개선을 바란다. 의사 정원을 아무리 늘린다 해도 소중한 환자의 생명을 맡겨도 가족들이 흔쾌히 결정할 수 있는 명의가 필요하다.

  자녀 교육여건과 생활 편의 시설을 갖춘 최고의 안정된 소득의 의사들에겐 근무환경 개선과 처우 개선이 우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벼랑 끝까지 내몰린 코로나19 환경의 자영업자 절규를 들어보시라. 일터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노동자 눈물의 뜨거움도 느껴보시라.

  업무개시명령 송달을 피하려고 휴대전화기를 끈다는 전공의들 행동은 학창시절 최고 두뇌 집단들의 모습이 떠올라 씁쓸했다.

  환자 가족이 말한다. 진료를 거부하는 행동은 폭거다. 코로나19로 모든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을 땐 엘리트 의사들도 함께 아파해야 한다. 의사는 환자 곁에 있을 때 의사라 부른다.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 가족은 이번 집단행동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동네병원은 “여름휴가”라는 안내문을 보고 고통을 참으며 되돌아올 때 앞이 캄캄하지 않았던가. 허탕한 시민들은 집단이기주의 파업에 양극화 현상을 체험한다.

  코로나 우울증과 기저질환자가 불안감에서 벗어날, 그런 멋진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천둥 번개가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새벽에 서울 병원으로 가지 않아도 될 고장에서 살고 싶다.

 이소애<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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