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공간인 책공방으로 세상에 꿈을 제안하고 싶다” 책공방북아트센터 김진섭 대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공간인 책공방으로 세상에 꿈을 제안하고 싶다” 책공방북아트센터 김진섭 대표
  • 이휘빈 기자
  • 승인 2020.08.31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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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혼 명인명장

 한때 전주에 수많은 출판사, 인쇄소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옛 이야기가 됐다. 인문과 학문, 예술의 고장인 전주에서 많은 책들이 나왔다가 사라졌지만 이에 대해 제대로 아는 이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1990년대 유럽에서 손으로 책을 만드는 독일의 장인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가슴에 새기고, 현재까지 책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김진섭(54) 책공방북아트센터 대표를 찾아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편집자주)

 

 삼례문화예술촌 책공방북아트센터에서 가장 먼저 사람들을 맞이하는 것은 책기계들이다. 세월을 입은 인쇄기계들이 고요하게 잠든 이 곳에서 책은 글자와 종이가 아니라 정성과 열정으로디자인한 물성을 만날 수 있다. 매미가 높게 우는 사무실에서 김진섭 대표를 만났다.

 1995년, 김진섭 대표는 유럽에서 소규모 책공방들이 책을 손으로 만드는 과정을 배운 후. 책 표지 디자인, 종이재질부터 개인 취향에 맞게 수제로 만드는 맞춤책의 과정은 책이 ‘제품’이 아닌 ‘예술적 컨텐츠’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 이후 종이 선택, 인쇄, 재책, 가공에 이르기까지 출판제작에 대한 정보를 집대성한 ‘책잘만드는책’을 출판하여 큰 방향을 제공하였다. 또한 옛 인쇄기부터 책을 만드는 도구인 송곳, 가위, 칼, 자, 인두, 본폴더, 조판스틱 등을 수집한 ‘책만드는도구’를 소중히 모우고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책공방은 과거에 컴퓨터가 나오기 이전 시절 우리선배들이 아날로그 방식으로 책을 만들 때 사용했던 책기계들을 소장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책의 물성이 담긴 책 만드는 기계와 책 만드는 도구, 우리선배 장인들이 만든 수제책 등의 자료를 기반으로 이와 관련한 전시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문화를 기록.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판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김 대표가 2001년 창립한 책공방은 2013년 6월에 삼례문화예술촌에서 열었다. 옛 삼례역 근처 양곡창고를 문화예술촌을 바꾸고, 이 곳에 책박물관과 책공방북아트센터, 목공소 등이 들어섰다. 책 마을의 씨앗이 심어진 삼례에서 김 대표는 그동안 이 곳에서 ‘내가 만든 책에 나의 이야기를 기록하자’는 주제를 가지고 지역의 콘텐츠로 지역출판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김 대표가 책공방에서 책을 만들면서 항상 빼놓지 않고 가장 힘주어서 이야기 하는 것은 바로 ‘기록’이다. 사람들이 직접 만든 책에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여 자신의 역사를 만들고, 지역에서는 지역의 기록을 통해 지역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며, 주민들과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책을 만드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만드는 기술적인 과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중요했죠. 사람들은 생각보다 자신의 이야기의 귀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2013년 책프로그램 ‘자서전 학교’에서는 여섯 명이 참여했습니다. 각자의 이야기들을 담아내는 과정을 이끌어내고, 설득하는 과정이 가장 힘겹지만 보람찼죠.”

 삼례 양곡창고를 10년간 지킨 할아버지, 30년간 농사지은 할머니를 찾아가서 설득하고 또 설득해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 그 과정에서 할아버지의 자부심, 할머니의 보람참을 기록하는 기쁨에 대해 김 대표의 목소리는 진중했다. 약 25년간 그는 책을 만들고, 인쇄 물품들을 수집하고, 컨텐츠들을 모아 책을 만드는데 집중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주변의 옛것이 문화의 근원이며 컨텐츠’라는 것을 알았다.

 “세상에 정말 많은 책들이 나오죠. 하지만 이 지역의 사람들이 가진 이야기와 역사들에 대한 책들은 너무 적어요. 우리 지역 사람들의 구술사들이 모이고 모여야 후대에 전달이 되고, 이로써 새로운 컨텐츠가 자라나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에 대해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습니다.”

 김 대표는 전북이 도서 출판 문화에 대해 충분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이를 활용하는데 미숙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근대 전주에서도 많은 수가 출간됐던 ‘딱지본’ 소설이나 1970~80년도 출간된 학생 노트에 대해서도 문학과 디자인, 출판 상황 등 다채로운 컨텐츠가 숨어있다는 것.

 “문화와 컨텐츠와 사상과 철학과 모든 미사어구가 책속에 수놓아져 있습니다. 사상과 기술의 확장성이 집약된 거에요. 예를 들어 딱지본 소설은 지금으로 치면 문화 컨텐츠였어요. 드라마이자 영화처럼 대중성과 흥미성을 가졌습니다. 옛날 노트들 역시 종이 질과 출판 디자인들이 시간이 가면서 변하고 있어요. 이런 근대의 고서(古書)들이 점차점차 사라지고, 관심이 멀어지는 것은 우리가 가진 훌륭한 재산을 잃어버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시대의 ‘과거’가 기록(Archive)되지 않는 데에 김 대표는 큰 걱정을 품고 있었다. 그는 지난 7년간 삼례를 사랑했고, 삼례 사람들에 대한 기록과 책공방에 대한 기록을 꾸준히 남겼다. 그 결과물 중 하나인 ‘책기계 수집기’는 작년 롯데출판문화대상 본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안았다.

 이처럼 책공방에서는 ‘책공방 일년일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과거에 흔했으나 지금은 귀해져 버린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책공방의 일년일책 프로젝트는 팔리고 읽히는 책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꼭 필요한 기록을 해보자는 의도에서 시작하였고 책 만드는 문화, 기록하는 삶, 자유출판을 향한 발걸음이다. 또한 시간이 흘러도 누군가 그 분야를 알기위해 꼭 필요한 참고도서가 될 만한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 위해 김 대표가 삼례에서 쓴 책은 11권에 달한다.

 김 대표에게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묻자 그는 깊은 생각을 말했다. “저는 우리 고장, 그리고 전북이 문화적 자긍심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태까지는 꿈을 꾸고, 나아갈 수 있는 미래가 보였어요. 그런데 최근 들어서 사람들이 꿈을 꾸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암울합니다. 꿈을 가지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아야 해요. 누구나 책을 쓰고, 저자가 될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공공의 컨텐츠로 기록을 남기고, 완주 주민들의 삶이 기록되길 바랍니다”

 출판과 문학의 인프라가 갖춰진 우리 고장에서 책 만드는 일이 어렵지 않도록 지역에 책과 함께하는 새로운 비전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공간을 제안하고 기록 문화인 아카이빙, 문화와 출판을 통해 북메이킹 문화를 확산하며 ‘자서전학교’와 ‘책학교’, ‘완주인생보’ 등 창작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김진섭 대표. 그가 꿈꾸는 ‘책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그와 뜻을 같이해, 삼례에서 오랫동안 책의 향기가 만개한다면, 우리 고장의 문화적 자긍심도 다시 꽃필 것이다.

이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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