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까지 끌어모은 똘똘한 집 한 채
영혼까지 끌어모은 똘똘한 집 한 채
  • 이소애 시인/문학평론가
  • 승인 2020.07.19 15: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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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까지 끌어모아 강남에 집 한 채 사는 게 꿈이라고 하는 세상이 되었다. 코로나 이후 지금까지 150만 개 이상 일자리가 줄었다는 고용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 내년도 최저임금 시급이 올해보다 130원 오른다는 기사는 빈부의 격차를 현실로 느꼈다. 시급 8,720은 1988년 제도 도입 이후 가장 낮은 수치라지만 취업에 목이 타는 노동자는 부르기만 하면 달려가고 싶단다.

 최저임금은 최저생계비 수준에 대한 기준일 뿐이지만 노동자에겐 그야말로 최저임금으로 일자리를 구하기 마련이다.

 햇볕 잘 드는 집에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내 마음대로 맞이하거나 거부하면서 사는 집. 집주인이 따로 없어 이사하라는 말을 듣지 않는 집. 소중한 가족사진 벽에 걸려고 대못을 박아도 눈 크게 뜨고 시끄럽다고, 벽이 망가진다고 간섭하지 않는 집. 밤늦도록 원고를 쓴다고 불을 켜도 불을 끄라며 계량기 바늘에 돈줄을 매달고 사는 주인의 비수 같은 눈초리가 없는 집.

 그런 주택 한 채에서 나의 생이 녹아드는 집이면 잘 살아온 게 아닌가? 아니 잘 사는 사람이 아닐까? 물론 집은 재산이다. 하지만 집이 투자의 물건으로 계산하고 주택매매로 차익을 거둔 액수가 한해 2조 원을 넘어섰다는 대한민국에 사는 내가 갑자기 갈 곳을 잃은 불안감이 밀어닥친다.

 1가구 1주택으로 살아온 내가 답답했는지 자녀도 가끔 서울 부동산에 투자했으면 노년이 화려했을 거라고 말을 한다. 그럴까? 정부에서 단타 양도차익을 노리거나 주택시장에서 불로소득을 올릴 수 있도록 가만히 놔두지 않을 제도 장치를 신뢰했었다.

 그래서 내 집을 사는 일과 내 집에서 사는 일이 얼마나 부를 좌우하는가를 흥미롭게 다룬 책들이 요즈음 출간된다. 아파트의 위치와 평수에 따라 부를 계산하는 터라서 서울 강남이 아닌 전주에서 오래된 아파트에서 숨을 쉬는 나는 추락하는 새와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왜 누가 누구를 위하여 대한민국의 부동산 정책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는가를 묻고 싶다. 선량한 국민이 열심히 노동해서 풍요로운 의식주를 누리고 사는 세상이 올지 알았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사는 내가 나를 속였다. 단번에 아파트를 팔고 강남으로 이사할 경우 〈기생충〉 영화에서처럼 지하 주택으로 갈 수밖에 없단다.

 어쩌다 만난 회식 자리에서 골프 이야기를 한다던 지 와인에 행복을 걸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애지중지하는 와인의 품종을 말하면서 와인 잔의 크기와 모양, 와인의 적정한 온도, 와인과 혀가 닿는 위치, 향을 품는 기능을 이야기할 때면 마치 외국어를 들을 때처럼 해석하는데, 어려움을 경험한다.

 꼭 하고 싶은 말은 아무리 좋은 와인도 누구랑 마시느냐에 따라 품격이 다르다고 말하려다 방향을 잘못 건드리는 것 같아 침묵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물론 그들의 재산을 다섯 손가락으로 꼽아보니 모두 열 번 쥐었다 폈다 해야 한다. 반백 년 살아온 흔적이었다.

 고위공직자부터 1가구 1주택이 상식인 사회가 오기를 바란다. 상식을 놀라게 하는 단타 주택매매는 어찌 되어 가는 세상인가. 왜 이렇게 영혼까지 끌어모아야만 꿈이라도 꾼다는 젊은이들에게 실망을 주는 나라가 되었는가를 따져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

 눈보라가 치는 겨울밤이었다. 항상 여닫는 문, 사람이 드나드는 방문 두 짝이 없었다. 눈보라는 이 서러운 사실에 동조라도 하는 듯 서너 평 되는 얼음장 같은 방으로 들이닥쳤다. 서로 내기라도 하는지 솜이불로 온몸을 덮어도 겨울바람은 솜이불을 뚫고 들어와 우리 가족들의 몸을 꽁꽁 얼리고 있었다.

 다달이 내야 할 방세가 대여섯 달 밀렸다는 사실 때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호랑이 같은 집주인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그날 이후, 주택을 소유한 자에 대한 부러움은 하늘 끝까지 솟았다. 주택보유는 투자의 대상이 아닌 행복의 보금자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하여 통장을 보고 또 보면서 꿈을 심었다. 그렇게 살아왔다.

 모든 생명을 포용하는 바다가 그립다. 잡을 수 없는 수평선에 행복을 투자했던 심심한 삶의 맛으로 시(詩)를 접해 본다.

 이소애<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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