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인물명 도로인 충경로 이야기
전주의 인물명 도로인 충경로 이야기
  • 김우영
  • 승인 2020.07.08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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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도시의 중심 도로 이름을 새로 지을 때 그 지역을 대표하는 명현이나 명장의 호, 시호를 따서 도로명으로 하는 것은 해방 후 한 시기의 관행이었다. 서울의 명동이 있는 원도심의 중심도로인 충무로는 잘 알려졌듯이, 임진왜란의 명장 충무공 이순신의 시호에서 따온 것이다. 이순신의 고향은 충남 아산으로 알려져 있지만, 충무로 부근 지금의 인현동에 이순신의 옛 생가터가 있으니 그 명칭은 매우 유서가 깊다.

 광주의 원도심의 중심 도로명은 금남로로 되어 있으나, 광주 지역을 대표하는 인물은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장으로 유명한 충장공 김덕령이다. 이미 구도심 도로명이 충장로로 작명되어 있어서, 이괄의 난에서의 공신, 금남군 정충신의 군호를 차용하여 도로명을 짓게 된 것이다. 시호가 아닌 군호를 굳이 사용하여 짓게 된 것은 정충신의 시호가 충무여서 중복으로 사용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전주의 원도심에 1984년 다가교 사거리에서 병무청 오거리까지의 4차선 도로가 개설되면서, 이를 충경로로 부르게 되었다. 이는 전주를 대표하는 인물로 임진왜란 때의 공적이 있는 충경공 이정란이 선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동서학동에서 남고산성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이정란을 배향한 충경사가 있지만, 시민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는 이정란이 임진왜란 당시 공신록에 언급되어 있지 않고, 특히 전공에 대한 공식 기록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정란이 전주의 역사에서 기념할만한 공적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이정란은 임진왜란 당시 전주성을 지키는 수성장의 역할을 하였고, 그의 행장에 의하면 왜군을 크게 격파한 전투에 직접 의병을 이끌고 참여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초기 금산에 진주한 왜군들은 전라도를 공략하고자 도모하였고, 이에 전라감사 이광은 광주목사 권율로 하여금 이치와 웅치를 지키게 하고, 자신은 지역의 관군을 이끌고 남고산성에 진을 치고, 전주성은 이정란에게 수성하게 하였다고 한다.

 웅치는 나주판관 이복남, 동복현감 황진, 김제군수 정담, 의병장 황박 등이 방어하고 있었는데, 황진이 이광의 명에 따라 군사를 이끌고 남원 쪽으로 경계를 나간 사이, 수천의 왜군이 진격하여, 하루 종일 치열한 공방이 있었다. 이복남과 황박의 군사는 후퇴하여 안덕원에 주둔하고, 정담과 그의 병사들은 최후까지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왜군은 웅치를 넘어 전주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이미 큰 타격을 입고 세력이 약화한 바, 안덕원에서 대치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때 남원에 가 있던 동복현감 황진의 군사가 전주를 거쳐 안덕원에 복귀하여, 전투가 벌어졌는데, 패배한 왜군들은 소양평으로 후퇴하였으나, 다시 크게 격파당하였다. 안덕원 전투는 왜군이 전주를 완전히 포기하게 만든 전투로 기록되어 있다. 행장에 의하면 이정란은 전주성에서 일부 의병을 이끌고 나와 이 전투에 참여하여 전공을 세웠다고 한다. 소양평의 세마천은 전투에서 승리한 황진 등의 군사들이 쉬면서 군마를 씻은 곳으로 전해진다.

 정유재란 당시에도 왜군이 남원에서 전주성을 향해 오자, 이정란은 자진하여 전주성의 수성부장을 맡아 대책에 몰두하였으나, 명나라 군사들이 철수해 버리고, 관군들도 밤새 도망을 가버리자, 이정란이 홀로 말을 달려 한양에 가서 사정을 알리니, 조정에서는 이정란을 전주부윤으로 삼고 삼도소모사를 겸하게 하였다. 이정란이 도착하였을 때는 왜군들이 전주성에 무혈입성하여 십이일을 머무르다 철수한 후였다. 명군이 다시 입성하였고, 혼란한 상황에서 이정란은 군량미를 조달하고 성중의 백성들을 구호하며 잘 위무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전주성을 온전히 보존하고 수성하는 데 있어 이정란과 그의 일족들의 역할은 과소평가할 수 없다. 그의 생가터는 전주시 덕진구 금상동 가소마을 전의(全義) 이씨 옛터에 있으며, 그의 선영은 완주군 구이면 장파동에 있다고 한다. 전의 이씨 일족들이 전주지역의 호족으로 번영한 것은 전란 중에도 그 영향력과 신망을 잃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우영<전주교육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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