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 노준섭 시인의 ‘보릿고개 ’
[초대시] 노준섭 시인의 ‘보릿고개 ’
  • 노준섭 시인
  • 승인 2020.06.22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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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릿고개 

 - 노준섭

 

 아버지는

 막걸리 한 됫박에 세상 시름을 타서 마신 아버지는

 한번도 들은적 없는 콧노래를 부르며 터덜거리는 자건거를 끌고 동냥치고개를 넘으셨다

 앞 발통에 달린 발전기는 아버지의 비척이는 걸음에는 빛을 내지 않고

 달도 없는 하늘 별들이 무더기로 맴을 돌았다

 어둠에 몸 감춘 동산에서 아카시꽃 향내가 풍겨나왔다

 오월이었다

 보리는 여적지 파랗고 새끼들 얼굴은 자꾸만 누래져가는

 오월이었다

 막걸리 한 됫박으로 아버지는

 아무것도 자전거 짐수레에 싣지 못 한 아버지는

 생전 하지 않던 콧노래를 흥얼대는 아버지는

 별무리의 소용돌이가 어지러워 개구리 우는 골창으로 몸을 부렸다

 휘어진 자전거 살대위에 가누지 못 한 몸을 실은 아버지 눈으로 별무리가 쏟아져 들어갔다가 은하수처럼 솟구쳤다

 세상에 가장 높은 고개

 넘다 넘다 이지러진 설운 삶을 어깨에 지고

 우지도 못 한 아버지 설움이

 산등성이 송화가루로 피어올랐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음력 4~5월은 찬란한 햇살 아래 모든 것이 빛나는 그런 계절이지요.

 산들 아무렇게나 핀 찔레꽃 하얀미소가 붉은 망또를 휘날리는 스페인집시처자같은 장미의 자태가 그리고 짙어지는 잎새들의 푸름이 현기증나는 계절~~ 

 이제는 어느 시골에서도 보기 힘들어진 보리

 나는 왜 이 싱그럽고 활기찬 계절에 떠올려진 기억들이 이리도 슬픈건지~~

 위의 글은 나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나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셨고, 면내 제일 억척인 어머니 덕분에 나의 유년이 배를 곯지는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는 궁핍의 그늘에 가린 사람들이 참 많기도 했던 내 유년의 고향이야기지요.

 
 아마 나보다 열살쯤만 어려도 나의 이 이야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싶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꼰대의 넋두리쯤으로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배고프지 않은 시간을 살면서도 왜 저 시절이 이리도 그리운건지 ?
 

 나의 이 글이, 이 넋두리가?

 행여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비슷한 이들에게는 작은 추억을 떠올리게 하거나 ?

 혹여 나이가 젊은 이들에게는 옛적의 어느 시절의 옛이야기쯤으로 받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누리는 풍요가 ?

 우리 부모님들의 희생과 노력이 밑바탕이 된 결과물이라는 것 ?

 그건 좀 알아주기를 바라는 욕심 더불어~~^^
 

 

노준섭 시인 

(전북사대부고, 우석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2006년 시와창작 신인상, 시와창작 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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