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대 대한민국 국새장박물관 만들자
한상대 대한민국 국새장박물관 만들자
  • 이정희
  • 승인 2020.06.15 17: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두 마리 봉황이 무궁화꽃을 피우며 날아 오르고

 태양 속에서는 삼족오가 봉황의 날개를 끌어당긴다.

 무궁화 꽃잎들이 천하를 가득 메운다.

 ……

 모든 것은 예리한 눈빛과 섬세한 손끝에서 나왔으니

 그 외롭고 혹독한 수련의 세월을 무엇으로 말하리.

 그러나 가슴속에 항상 찬란한 국새(國璽)를 품고 있었으니

 온갖 차별과 굴욕의 순간들도 깃털처럼 가벼웠으리.’

 제주 4·3항쟁을 담은 장편서사시 ‘한라산’을 발표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됐던 시인 이산하 씨가 대한민국 제5대 국새장(國璽匠)인 한상대(韓相大) 씨의 국새와 작품세계를 시로 노래했다.

 또 ‘제5대 국새백서’에는 당시 심사위원장인 최응천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가 ‘봉황의 자세와 날개, 꼬리 부분을 역동감 있게 조각해 힘 있고 단정하면서도 웅건한 봉황의 느낌을 충실히 표현하였고, 조각기술과 조형미가 뛰어난 작품이다’는 심사평이 담겨 있다.

 제5대 국새가 건국 이래 최고의 국새로 평가받고 있는 이유는 왜일까. 대한민국 국새 역사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상대 국새장이 ‘전북의 보물’임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국새는 그 시대 최고의 예술성과 과학성이 결합한 결정체다. 지금의 국새는 금·은·구리·아연에 희귀금속인 이리듐까지 첨가한 최첨단 합금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새는 대통령령인 ‘국새규정’에 근거하여 헌법 개정 공포문 전문과 5급 이상 공무원 임명장, 훈·포장 증, 외교문서 등을 날인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1대 국새는 정부 수립(1948) 이듬해인 1949년 5월 5일 제작돼 14년간 사용됐다. 2대 국새는 1963년 1월 새 국새 규정에 따라 가로×세로×높이 7cm의 정사각형에 한글 전서(篆書)로 ‘대한민국’이라고 새겨 제작해 36년간 사용했다. 3대 국새는 1999년 2월 가로×세로×높이 10.1cm의 새로운 국새로 제작했다. 그러나 6년이 되던 2005년 균열이 발견돼 최단명 국새가 됐다.

 제4대 국새는 가로×세로×높이 9.9cm로, 손잡이(인뉴)는 봉황 모양으로, 글씨(인문)는 훈민정음체로 제작돼 2008년 2월부터 사용됐다. 그러나 민홍규 국새단장의 사기행각으로 ‘가짜’임이 밝혀져 국·내외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사용 12년 만에 폐기됐다.

 ‘균열’과 ‘가짜국새파동’ 등 악재가 잇따르자 정부는 2011년 제대로 된 국새를 만들기 위해 국새제작공모를 시행했다. 문화예술계의 고질적 병폐인 학맥이나 인맥보다는 ‘완전한 실력’ 만으로 겨루기 위해 출품자의 이름을 철저히 가리고 심사했다. 내로라하는 장인들이 대거 참가했다. 인뉴 부문에만 22점이 출품됐다. 이 가운데 봉황 한 쌍이 만개한 무궁화를 받치고 하늘로 비상하는 듯한 모양으로 제작된 국새가 최고점을 받아 대상을 수상했다. 수상자는 대학교수도, 유명 장인도 아니었다. 무명에 가까운 한상대 장인의 작품이었다.

 이처럼 나라의 상징인 제5대 국새를 만든 장인이 바로 우리 고장 전북출신이다. 원광대학교 귀금속공예학과를 졸업한 한상대 국새장은 국새 제작 과정에서 예술성은 물론 실용성과 상징성을 동시에 인정받아 ‘대한민국 제5대 국새장인’으로 선정됐다.

 한상대 국새장은 전라북도가, 익산시가, 원광대학교가 자랑스럽고 소중히 여겨야 할 예술인이다. 하지만, 한상대 국새장은 현재 전북 밖으로 떠돌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필자는 5대 국새가 대한민국 역대 국새 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 만큼 ‘한상대 국새장박물관’ 만들기를 공개 제안한다. 새로운 문화관광상품으로 충분하다는 확신 때문이다.

 이정희 <지후아트갤러리 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