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에 대하여
사면에 대하여
  • 최정호
  • 승인 2020.06.03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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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헌법 79조는 삼권분립의 예외 조항으로 대통령에게 사면권을 부여하고 있다. 사면은 사법부가 아닌 국가기관이 선고된 형의 효력을 소멸시키거나 소추권을 소멸시키는 것으로 넓은 의미에서는 감형과 복권을 포함한다. 그러므로 사면권은 권력분립의 원칙에 반하는 극히 예외적인 것으로 사법권에 대한 일부적 제한을 초래한다.

  따라서 사면권은 전제주의 시대의 유물이며, 사법권의 권한 남용에 대한 견제이지만 동시에 사법권에 대한 강력한 부정이다. 사법부의 최종적 판단을 간단히 뒤집어 버리기 때문에 대통령은 행정권의 우두머리일 뿐아니라 사법권의 재심자가 되어 선고된 형을 소멸시킬 권한을 가지게 된다. 대통령의 이러한 권한은 헌법이 주권자의 직접선거로 선출되는 대통령에게 삼권 분립의 한 축이 아니라 제왕적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그렇다면 법치주의는 무엇인가? “사람이나 폭력이 아닌 법이 지배하는 국가원리이다.” 통치자의 자의에 의한 지배가 아닌 합리적이고, 공공적인 규칙에 의한 지배를 통해 공정한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나 법치주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여러가지 시행착오가 발생하여 현재는 실질적 법치주의를 추구한다. “히틀러의 만행이 당시에 합법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한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형식적 법치의 단점을 지적한 것이다.

  삼권분립의 필요악이라고나 할 수 있을까? 오늘 왜 나는 잘 알지도 모르는 법치에 대해 구글을 찾아가며 이 글을 쓰고 있는가? 최근에 자주 등장하는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복권을 주장하는 글들이 신문, 방송에서 보여지기 때문이다. 시대에 뒤처진 법체계 때문에 발생하는 오차를 교정하고자 하는 일반사면은 이 분야 비 전문가로서 언급을 회피하고 오늘은 전직 이명박-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사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고자 한다.

  이 두 사람은 아직 재판도 진행 중인 범죄자들이다. 나는 이 사람들의 기소 내용이나 진행중인 재판과정을 잘 알지도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다. 상식과 일치하지 않는 법률 지식과 백화점식 범죄 혐의가 다종다양하여 일관적으로 추적관찰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법원과 검찰의 권위가 땅에 떨어져서 그들의 판단에 대한 신뢰는 의심되지만,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은 없고, 혁명재판소를 설치하지 않는 한 헌법과 법률에 의거한 재판의 진행을 지켜보고 결과를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심심치 않게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전례를 들먹이며 사면을 언급한다. 나는 40년 전 범죄인 1980년 광주에서의 민간인 학살 범인 전두환, 노태우의 사면의 결과를 묻고 싶다. 그들은 민간인을 학살하고 군사반란에 성공하여 10년 이상 정치권력을 유지하였다. 3당 합당 등 군사정권에 대한 징죄가 연기되고, 20여 년이 지난 다음에야 (1997년) 정권이 교체되었으나, 소수파인 집권세력은 국민화합이란 알리바이를 명분으로 전두환 등에게 성급하게 사면을 했다. 유신과 신군부는 군사반란을 이어가며 전후 1960년대부터 2020년까지 60년 가까이 대한민국의 주류 지배세력으로 군림해 오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문 재인이 그 중간에 천재일우의 기회를 잡아 정권을 잡았으나, 유신잔당은 여전히 큰 세력을 유지하고, 신군부 세력과 합종연횡하며 보수라는 이름으로 당당한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헌법의 중단 없는 점진적 개혁을 통한 정권교체로 유혈적 혁명이 없이 우리사회는 비교적 평화로운 변화를 택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점진적 변화가 정의를 실현하는데 굼뜨지만, 혁명보다 평화로워서 선호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거의 범죄에 대한 용서는 늘 미래의 범죄에 용기를 주는 법이다. 전두환 등은 나라와 국민에게서 훔친 돈으로 지금도 호의호식하며, 부과된 벌금도 내지 않고 살고 있다. 그 아들들과 딸들도 그 돈으로 평생을 부자로 살고 있다. 친일파의 후손들이 대대손손 잘 살아 있듯이…. 우리는 지금도 전두환과 그 자손들의 뻔뻔함을 감내하며 치욕스럽게 살고 있다. 전두환과 신군부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할 수 있겠는가? 자신과 자손들의 미래가 암울한 치욕으로 떨어지길 감내하겠는가? 이명박과 박근혜가 또 다른 전두환이 되는 것이 옳은 길인가?

  그들과 동업자이거나 아니면 그들의 범죄를 따라하고자 하는 세력들의 암중모색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최정호<대자인병원 성형외과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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