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의 문제
‘일부’의 문제
  • 나영주 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 승인 2020.05.2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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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인 내게 지인들이 가끔 묻는다. ‘뉴스와 신문에 나오는 일들이 진짜 있어?’ 수십억의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 독방 배정을 미끼로 거래하는 변호사 등등. 7년차 평범한 변호사에게 물어봤자 딱히 대답해 줄 수 있는 성질의 것들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다른 세상 일이다’라고 답해준다. 물론 묻는 이들도 그다지 시원한 답변을 바라진 않는 눈치다. ‘다 그렇고 그런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한다. 그럴 때는 ‘일부에 불과하니 전체를 매도하지 마’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아무말 하지 않고 지나갈 때가 대부분이다. 논쟁해봤자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일부 드립’이라는 조어가 있다. 어떤 집단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를 일으킨 자는 소수이고 대부분의 집단 구성원들은 문제가 없으니 집단 전체를 매도하지 말라는 변명을 말한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인데, 어째 입맛이 개운치는 않다. ‘일부 드립’을 비꼬는 말들도 있다. 예컨대 ‘일부분’에 해당하는 면적을 90%로 그려 놓고, 일부가 아닌 부분은 조금 남겨두는 식으로 풍자하는 그림도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그래서일까. 오피니언 리더, 정치인, 종교인, 교사 등 특정 직업군의 ‘일부’ 문제를 일으킨 자들의 기사엔 ‘일부가 또?’라는 비아냥의 댓글이 달리곤 한다.

 성급한 일반화는 경계해야 한다. 일반화는 인식의 편의 때문에 발생한다. 특정 집단의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평가는 피곤한 일이다. 뭉뚱그려 특정 집단에 대한 편견을 형성하고 구성원들을 평가하는 일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편, 특정 집단을 비판할 때 성급한 일반화를 경계하고 명예훼손(?)을 피하고자 서두에 붙는 말들이 있다. 사법농단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판사들은 양승태 코드의 법원행정처 고위 법관들이지 일선에서 묵묵히 재판에 전념하는 대부분 판사들에게 해당하는 말은 아니라고 하거나, 일부 정치검찰의 권력 남용이 문제지 일반 범죄를 다루는 형사부 평검사들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는 경우가 예다. 교인들을 착취하고 성범죄를 저지르는 종교인들에 대한 비판도 마찬가지다.

 ‘일부 드립’이 횡행(?)하는 저변을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특히 사회 지도층이라고 불리는 집단, 일반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큰 집단, 견제받지 않는 집단의 경우 단순히 일부가 그렇다고 하면서 책임회피를 할 순 없다. 문제의 소지는 언제나 그 집단 내부에 온존한다. 일부 고위층의 도덕적 해이나 일탈로만 치부할 수 없는 집단 자체의 특성과 문제를 인식하지 못하고 ‘일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비록 문제에 가담하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대다수 구성원들의 면피로 볼 수 있다.

 권력기관과 종교집단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문제적인 자들이 아니었다. 그들도 성실한 집단 구성원이었을 것이고, 그러한 성실함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승진을 하여 고위층에 올라갔을 것이다. 수십억의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도, 수십억의 대가를 요구하며 내세운 ‘스펙’은 자신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견제받지 않는 집단의 문제를 도외시한다면, 지금 당장 일선에서 성실히 복무하는 구성원들도 언젠가는 물의를 일으킬 수 있다. 집단에 대한 비판을 문제를 일으킨 자들의 일탈로 치부해서는 집단의 발전이 없다. ‘일부’의 문제라고 회피할 일이 아니다. 구조적 문제에 대한 집단 구성원 전체의 성찰이 필요하다. 최근 각종 의혹이 제기되는 ‘정의연 사태’도 시민단체 일반의 자성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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