균형 발전으로 문화적 삶을 향유하기 위하여
균형 발전으로 문화적 삶을 향유하기 위하여
  • 정정숙
  • 승인 2020.05.21 14: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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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의 의미

 ‘균형’이라는 단어는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은 저울추를 연상시킨다. 수평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저울추 말이다. 공평하고 안정적이다. 놀이터의 시소도 떠올릴 수 있다. 물론 시소는 탈 사람이 없을 때는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만, 두 사람이 타면 어느새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즐길 수 있는 균형감을 갖는다. 이 균형이라는 단어에 돌연 ‘발전’이라는 지향을 더하면 발전해야 한다는 무언의 강박이 발생하면서 행정 혹은 정치적 활동이 된다.

 균형 발전을 지향한다는 것은 불균형 사회, 불균형 구조를 전제한다. 전제된 불균형 사회와 구조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형성되지 않는다. 권력과 그 권력을 추종하는 비호세력들이 추구한 불균형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통해 형성된다. 그 흐름을 거슬러야 비로소 균형발전은 가능해지므로 단순한 희망사항으로 성취될 수 없는 과제이다.

 정확한 실태 조사에 기초한 엄밀하고 실현가능한 정책과 전략적 재원 투입 및 현장 모니터링이 관건일 것이다. 정책 현장은 시소와 같이 즐겁게 오르락내리락 할 수 없는 이기주의와 지역주의의 역사가 누적된 삶의 구체적인 터이다. 그래서 균형발전은 그야말로 지향일 뿐이며 영원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일 수 있다는 냉소주의의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체념이 가장 쉽지만, 균형 잡힌 건강한 몸이 생명력을 발산하며 만족한 삶을 제공하듯, 균형 발전하는 국가만이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를 높여줄 것이기 때문에, 균형발전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인 긴 호흡으로 잘 쉬면서 열정을 발휘해야 한다.

 ▲불균형한 사회의 한 측면

 긴 호흡으로 잘 쉬면서 열정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문화 활동을 가까이 해야 한다. 급한 일에 매진하느라 음악을 잊고 있다가 좋아하는 음악을 접할 때 형용하기 어려운 해방감과 기쁨을 느낀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이라고 할까. 이러한 경험들의 빈도가 늘어날 때 삶의 질은 향상되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

 개개인의 삶의 만족도를 전체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고, 그 전략적인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국가균형발전위원회의 존재이유이다. 우리 사회의 불균형성은 소득, 지역, 세대, 성별, 국적 부문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복지, 교육부문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복지 부문에서 사회안전망인 사회복지에 대한 예산 배정에 비해 문화복지는 취약하다.

 육체와 정신적 에너지가 소진된 연 후에야 혜택을 제공하는 값비싼 휘발성 사후대책이 아니라 효율적인 사전대책으로서 예방복지형 성격이 있고, 일과 노동에 기꺼이 매진하게 하는 생산복지형 특징을 지닌 문화복지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주역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문화향유인 문화 활동에의 참여 증진으로 가는 길은 아직 멀다. 특히 대도시에 비해 농촌에서 11월부터 3월까지의 여가 기간에 참여하는 문화 활동은 1960년대 놀이인 ‘화투’등에 의존적이어서 다양한 예술적 경험과 희열감을 느낄 기회는 희소한 것이 현실이다.

 ▲균형 잡힌 문화적 삶을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

 유네스코가 2021년까지의 중기전략 보고서에서 2008년에 이르러서는 1981년 대비 하루에 1.25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극빈층이 전 지구상에서 52%에서 22%로 반감되었지만, 불평등한 영역은 축소되지 않고, 인권을 향유하는데 도전이 되고 있다고 했다. 문화권은 인권의 필수 영역이다. 불평등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생활에의 참여 권한을 축소시킨다. 우리의 농촌은 개발도상국의 농촌이 아니고, 이미 선진국의 농촌임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의 놀이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것은 정부 정책이 현장과 유리된 채 수립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농어업인 삶의 질 향상 및 농어촌지역 개발촉진에 관한 특별법’은 33-34조에서 농어촌의 문화예술진흥과 농어촌 문화복지 시설의 설치 및 운영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35조에서는 도시와 농어촌 간의 교류확대도 추진하도록 했다. 문화예술진흥이 공연, 전시를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농민들이 공연, 전시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예술교육과 생활문화의 현장밀착형 정책이 필요하다. 교류의 내용도 교류 참여자들의 자율적 동기에 기초하는 섬세한 기획에 의거해 이루어지는지 검토가 요망된다.

 문화향수실태조사를 보면 2016년과 2018년 사이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2016년 문화예술 관람률이 대도시는 81.2%, 읍·면지역은 65.7%이지만, 2018년에는 대도시가 85.2%, 읍·면 71.7%이다. 격차가 약간 줄어들었다. 물론 더 줄어야 한다. 그리고 이 비율은 향수 통계의 허상일 가능성도 있다. ‘작은 영화관’ 등을 통한 영화관람률 증진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참여적 몰입형 활동이 아니라 구경만 하는 것에 박수를 치는 것은 농민들을 계속 구경꾼으로 남겨두는 일이 될 수 있다. 정책입안자들은 비율 증가에 자족하면서 말이다.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는 최근 지방소멸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수도권 베이비부머들이 비수도권 지역에 유입될 수 있는 활성화 방안 및 지역 여가 문화향유 여건 개선을 통한 균형발전 방안 연구 용역도 공모하였다. 대통령 직속위원회의 이러한 노력에 발맞추어 정부 부처들도 좀 더 열린 정책개발과 현장 모니터링에 매진해야 한다. 이제 봉준호 영화감독은 국가대표형 영웅이다. 국가대표는 나라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데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데에 의의가 있으며, 어떤 영웅이든 영웅은 관중을 위하여 있는 것(박영선, 인생, 2017년, 71쪽)이라는 말과 같이 정부는 국민 한명 한명의 행복을 통한 국민 모두의 행복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정정숙<균형발전위원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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