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자존시대 연다> 9) 전북지역 백제 유물·유적
<전북자존시대 연다> 9) 전북지역 백제 유물·유적
  • 이방희 기자
  • 승인 2020.05.06 17: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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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지역의 백제는 삼국시대 말부터 속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이전은 마한으로 칭하지만 어느 지역이 언제까지 마한이고 언제부터 백제였는가 하는 정확한 구분이 어렵다는게 학계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현재의 지명으로 가장 북쪽인 익산과 가장 남쪽인 고창을 한계로 한다면 4세기 말부터 5세기 초에는 백제의 정치와 문화가 전북을 지배 또는 영향권 안에 있었으며 그 시기의 유물과 유적을 발굴·연구하고 체계화시켜 보전하는 것 또한 의미있는 작업으로 여겨진다.

 #백제의 유적

 ▲왕궁리 유적

 익산 왕궁리 유적은 ‘왕궁평’이라고 불리며 백제 말기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정치·군사적으로 매우 중용한 지역임이 ‘삼국사기’ 등의 문헌을 통해 널리 알려져왔다. 유적은 구릉에 남북 492m, 동서 234m, 폭 3m 내외의 궁장을 두른 후 내부에 경사면을 따라 4단의 석축을 쌓고 평탄대지를 조성하여 정무공간과 생활공간, 후원공간을 배치했다. 궁성 역할을 다한 뒤에는 회랑이 없는 탑·금당·강당의 1탑 1금당의 사찰로 변화되었다.

 ▲익산 미륵사지

 미륵사지는 금마면 용화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한국 최대의 사찰지이다. 639년(백제 무왕)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무왕(武王)과 선화공주(善花公主)의 설화로 알려진 사찰이다. 국보 제11호인 동양 최대 석탑인 미륵사지 서석탑과 보물 제236호인 미륵사지 당간지주가 있으며 1974년 8월 원광대학교에서 실시한 발굴조사 때 동탑지(東塔址)도 발견되었다. 건물지(建物址)는 백제와 고구려의 건축기법이 복합되어 있다.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 8개 유적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한편 미륵사지 석탑이 지난 20년 동안 정비와 보수를 마치고 2019년 4월 30일 준공식을 가졌다. 석탑이 건립된 지 1380주년이며 1999년 석탑의 해체보수가 결정된 지 20년이 되는 해로 준공식의 의미를 더했다. 1999년 문화재위원회에서 6층까지 해체수리를 결정하면서 보수작업에 착수했고 이후 2001년부터 본격적인 석탑의 해체조사에 착수했다. 2017년까지 원래 남아있던 6층까지 수리 완료했다.

▲익산 제석사지

 제석사지는 백제 무왕이 수도를 왕궁평으로 옮기려고 지은 궁궐 근처에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을 중심 불상으로 모신 절이 있던 자리이다. 1998년 사적 제405호로 지정되었다. 제석사는 백제왕실의 번창과 안녕을 위해 지어진 왕실사찰이다. 동서 약 100m, 남북 약 170m 정도의 상당히 규모가 큰 가람이다. 1탑 1금당의 가람 배치 구조를 가지고 있는 절 중에서는 국내 최대규모이다.

▲익산 쌍릉

 백제 왕도 유산의 하나인 능묘 유적으로서 미륵사지 남쪽 약 1.7km, 왕궁리 유적 서쪽 2km 지점에 위치한다. 백제 사비식 왕릉으로서 7세기 전반 익산에 왕궁성과 미륵사, 제석사 등을 조영하며 백제의 중흥을 이루고자했던 제30대 무왕과 관련된 능으로 추정하고 있다.

▲익산 입점리 고분군

 입점리 고분군은 240m 함라산에서 금강변을 따라 뻗어 내린 산 능선에 21기의 고분이 있다. 고분군의 유형은 수혈식석곽묘(구덩식돌관무덤) 11기, 횡구식석곽묘(앞트기식 돌곽무덤) 2기, 횡혈실석실분(굴식돌방무덤) 7기, 옹관묘(독무덤) 1기로 여러 가지 유형의 고분이 뒤섞여 나타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밖의 고분군

 백제의 유적을 알수 있는 고분군들이 도내 곳곳에 산재하며 유구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군산 산월리 고분군, 고창 봉덕리 고분군, 고창 칠암리 고분, 정읍 운학리 고분, 정읍 은선리 고분, 남원 초촌리 고분 등이다.

▲백제 산성

 백제의 주요 산성은 익산 토성(오금산성), 완주 배매산성, 정읍 고사부리성, 부안 우금산성, 순창 대모산성, 진안 환미산성, 장수 합미성 등 도내 전 지역에 분포되어 문화유산으로써의 가치를 알리고 있다.

 ▲김제 벽골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저수지인 김제 벽골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흘해니사금 21년의 기록에 제방의 길이가 1800보로 되어 있다. 통일신라와 고려 현종, 인종때 고쳐 쌓았다. 조선 태종 15년(1415년)에 중수하였으나 세종 2년(1420년)에 폭우로 유실되었다. 1925년 동진수리조합에서 개조하여 원형이 크게 훼손되었다. 현재 제방과 수문 등이 남아 있으며 제방의 길이는 약 2.5km, 높이는 4.2~4.5m 내외이다.

 최근에는 김제 벽골제 수문 추정지(수여거) 시굴조사 결과 벽골제 내부의 용수를 외부 경작지로 공급하는 대규모 도수로가 확인됐다. 시굴조사 결과 제내지역(저수지의 안쪽)에서 대형의 판석으로 바닥시설을 만든 정교한 구조의 대규모 도수로와 도수로 보강시설, 호안석축, 도수로 주변의 도로 유구와 각종 생활 유구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됐으며, 제외지역(관개지역)에서 자연지형을 이용한 대규모 방수로의 존재도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벽골제 제방은 현 제방 2.5km에 1.3km를 더하여 3.8km에 이르게 되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백제의 유물

 ▲왕궁리 유적 유물

 왕궁리 유적에서는 2015년까지 약 4천여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유물은 금제품, 유리제품, 수부명 인장기와, 토기 등이 있다. 대부분 왕궁을 상징하는 유물들이다.

치미.

 ▲미륵사지 유물

 미륵사지는 건축 이외에도 출토된 유물에서 1400년전 백제 미륵사의 품격을 엿볼수 있는 유물이 많다. 지붕의 용마루 끝에 올려지는 새꼬리 모양의 치미(망새), 청자처럼 푸른색의 납유리를 표면에 바른 써가래기와 붉은색이 칠해진 연꽃무늬 수막새, 2009년 서석탑에서 출토된 정교하고 화려한 여러 무늬가 새겨진 금동제사리 외호와 금제사리 내호 등 이다.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를 위한 해체 과정에서는 백제왕실의 안녕을 위해 조성된 사리장엄이 발견되었다.

금제 사리내호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국보 제289호 왕궁리 오층석탑을 보수하기 위해 1965년 해체하면서 기단부와 1층 지붕돌 윗면에서 발견된 유물들이다. 연꽃 모양의 마개가 덮여있는 녹색의 유리사리병과 금강경의 내용을 새긴 19장의 금은제 금강경판이 나왔다.

 

 #백제문화 활용은?

 전북지역의 백제문화는 가야, 삼한의 마한과 중첩되는 점이 많다는게 발굴과 연구에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노기환 전북도 가야·백제팀 학예연구사는 “전북지역은 삼국시대 백제의 영역 내에 있었음으로 여러 종류의 많은 백제 유적·유물들이 존재한다”며 “전북지역 백제문화 활용차원에서 3개 권역으로 나눠 연구해 볼만하다”고 말했다. 노 연구사는 “익산을 중심으로 완주, 전주를 포함하는 백제 익산왕도 문화권이 그 하나이며 정읍 고사리부성, 은선리 고분 등을 중심으로 하는 김제, 부안, 고창 봉덕리 고분을 포함하는 해양과 생산의 중방문화권, 그리고 남원, 장수, 무주, 진안 등의 백제의 국경문화 유적으로 분류 연구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방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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