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권자 집단본능, 너무 믿지 마라
유권자 집단본능, 너무 믿지 마라
  • 김창곤
  • 승인 2020.04.28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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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이 달라졌어요.” 주말 지역 TV토론에서 민주당 총선 압승을 놓고 찬사가 이어진다. 패널로 나온 교수는 “코로나 사태가 시민 의식과 자긍심을 높였다”며 “변화와 쇄신에 대한 시민 기대가 선거 후 커지고 있다”고 역설한다. 유권자는 그러나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 민주화 이후 전북 선거를 휩쓴 것은 지역감정이라는 ‘집단본능’이었다.

 이번 총선에서 전북 유권자들은 ‘문 대통령 지키기’에 비장했다. 민생당은 창당 때부터 화제에 오르지 못했다. 유일한 무소속 당선자도 ‘민주당 복당’을 공약했다. ‘비장함’이 선거 동력인 것은 호남과 이 나랏일만이 아니다. 트럼프를 미국 대통령에 당선시킨 것도 몰락한 백인 노동자들의 비장함이었다.

 대중은 비장함을 받드는 지도자를 원한다. 아르헨티나는 8번째 국가부도를 앞두고 작년 10월 포퓰리스트 대통령을 선택했다. 긴축과 개혁을 추진해온 대통령을 4년만에 끌어내리고 복지 확대와 임금 인상을 내건 좌파를 다시 뽑았다. 히틀러는 1934년 8월 힌덴부르크 대통령 사망 1시간도 안돼 대통령직과 자신의 총리직을 합쳤다. 17일 뒤 총통 직을 승인하는 투표장엔 독일 국민 4,550만명이 몰렸다. 3,800만명이 찬성했다. 비장함은 광기로도 바뀐다.

 21대 총선 압승의 주역들은 표정부터 유순하다. ‘오만과 독주를 경계하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겸손히 일하겠다’로 말문을 연다. ‘지역 현안과제와 촛불정부 개혁과제 완수’를 다짐한 뒤 ‘민주당 재집권 기반 마련’이라는 신념을 단호히 드러낸다.

 전북 민주당 당선자는 모두 50대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신념으로 삼은, 이른바 ‘86세대’다. 선거 전 집권 핵심세력이 드러낸 윤리적 타락에 이들이 어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집권 핵심세력은 자신들의 휘슬로 당을 움직이려 한다. 작년 9월 ‘조국 사태’ 때 소신을 말한 의원이 공천에서 어떻게 탈락했는지 당선자들은 잘 안다. 한병도 익산을 당선자는 그 자신부터 울산시장 선거 개입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돼 있다. 전주 여러 곳에 “강욱아 검찰 개혁 너만 믿는다”는 ‘고교 동기 일동’의 현수막이 걸렸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당선자는 자신을 재판에 넘긴 검찰을 겨냥, “세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확실히 느끼도록 갚아주겠다”고 했다.

 총선 후 여러 토론에서 새만금사업은 고정 레퍼토리다. 새만금을 기업이 개발했어도 이렇게 늘어졌을까(삼성전자는 2019~2030년 비메모리 분야에만 133조원을 투자한다). 올해 수질개선 2단계 사업 마감을 앞두고 25년째 이어진 해수유통 논란이 또 고개를 든다. 토론엔 탄소법·공공의대법, 제3금융중심지도 등장한다. 시장과 지역 균형개발 논리를 적절이 배합해야 하는 현안들이다.

 일자리는 전북에서 가장 긴박한 과제다. 매년 청년 1만명이 고향을 등진다. 군산의 일자리가 3년 새 1만명 줄었고, 올해 5,000명이 더 준다는 전망이다. 지난 3월 OCI에 이어 타타대우가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섰다. 코로나 사태 이후 고용위기는 도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한다’는 게 헌법 46조지만 국가 아젠다 다수는 지역 현안이다.

 총선 후 토론들은 그전처럼 김이 빠졌다. 화제 대부분이 낡았다. 질문은 없고 오래전 정해진 답, 하나마나한 답만 오간다. 지역에서 다투거나 책임질 것 없다. 공천만 받으면 된다. 가뜩이나 스토리가 적은 지역에서 이번 총선은 이렇다 할 화제 하나 남기지 못했다.

 전북 당선자는 의석 점유 비율 3.3%에 모두 초·재선이다. 당선까지 얼마나 고생했던가. 민주당 당선자 9명이 한 팀을 구성했다고 하니 역량을 어찌 키워낼지 지켜볼 일이다. 대답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게 리더다. 아는 게 적을수록 신념이 강하다. 신념이 강하면 질문조차 찾지 못한다. 질문을 찾기 위해 지역의 시시한 일상부터 정성들여 자세히 살펴보시라. 유권자 본능은 언제 바뀔지 모른다. 4년은 짧다.

 김창곤 <前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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