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할당제에 대한 왈가왈부
여성할당제에 대한 왈가왈부
  • 이윤애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 승인 2020.04.27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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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대 총선은 끝났다. 전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전쟁을 벌이는 중에도 대한민국은 훌륭하게 선거도 치러냈다. 선거결과로 색칠된 대한민국 지도는 너무 선명하고 단조로워 아름답게 보이진 않는다. 민주주의를 잠식시키는 선거제도의 허점들 때문에 정치가 코미디보다도 더 웃기고 퇴행적인 지점들이 목도되기도 했다. 개별 후보자들이나 정당들의 행태보다도 더한 역대급 코미디는 전국 지역구에 30% 이상 여성후보를 낸 허경영 국가혁명배당금당이 국가가 지급하는 여성추천보조금 8억4천만 원을 싹쓸이했다는 사실이다.

 선거 때마다 각 당에서는 여성인재를 영입하고 우대한다고 큰소리를 쳤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속 빈 강정임을 알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지역구 의무공천 30%에도 훨씬 미치지 못했고 당선자 역시 비례대표 포함 57명(19%)으로 역대 최대라고 하지만 20%의 벽도 넘지 못했다. 여의도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굳건했다. 안타깝게도 우리지역에서는 지역구의원이 단 한 명도 당선되지 못했다. 항상 이럴 때 반복되는 멘트가 ‘여성인재가 없다’고 애써 변명한다. 그러한 변명은 여성인재를 세우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게으름의 표현일 뿐이다.

 최근 정치로 진출하는 여성들이 늘어났다. 많은 국가에서는 남성들만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던 재무장관이나 외교부장관, 국방장관도 종종 여성으로 임명되기도 한다. 성평등에 기여했는지 여부는 논외로 하더라도 우리는 대통령도 여성으로 선출해봤다. 국무총리, 부총리, 장관들을 여성으로 가져봤고 이번 코로나 정국에서도 여성리더십은 빛났다.

 과거에는 여성의 정치적 자질이나 관심부족이 주요 의제였다면 이제는 정치제도 자체가 얼마나 여성에게 열려있고 수용되는지가 주요 관심사다. 나아가 정치적 결정에 누가 포함되고 어떤 집단이 배제되었는가를 따지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면 ‘누가’ 정책결정에 참여하였는지는 ‘무엇’이 정치적 안건이 되고 누구의 이익이 우선 주목받고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전체 여성의 수에 비해서 정치적 여성대표성의 규모는 터무니없이 작다. 할당제 도입이 필요한 이유이다. 제도를 설명해주는 ‘긍정적 차별’이나 ‘특별 대우’ 등과 같은 개념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 할당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집단에 대한 우대정책으로서 한 집단에 집중되어 있는 ‘고착된 특권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로 보는 것이 더 합당하다.

 종종 할당제 반대자들은 여성정치인들에게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후보로 지명되거나 선출되었다고 비난하거나 극렬하게 저항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남성정치인들이 선출과정에서 자질과 상관없이 명백한 이익을 누리는데도 과연 유사한 비난을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영국의 정치학자 레인보 머리(Rainbow Murray)는 여성할당제 보다는 오히려 남성할당제를 논해야 할 때라고 주장한다. 남성의 과대표성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 지점에서 남성의 자격을 철저하게 따져보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겨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백배 공감하며 적극 찬동한다.

 할당제에 기댄 여성의 명목적 대표성만을 환호하진 않는다. 정치에 진출한 여성들이 정책내용으로 세상을 바꿔내는데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상징적 대표성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정치를 기득권 정치인들에게만 맡겨 두기에는 우리의 삶이 지대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한편 할당제만 점잖게 요구하기보다는 여성들의 경험으로 정치의 새판을 짜기 위해 ‘여성의당’으로 뭉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선거제도와 현실의 높은 벽은 결실을 맺기엔 험난했다.

 여성에게 민주주의는 실패한 제도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각 정당이 이번 선거의 공천과정에서 허경영만큼만 했더라도 21대 여의도와 대한민국의 정치는 달라질 거라고 야무진 꿈을 꾸어본다.

 이윤애<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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