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스케치의 ‘옛 친구에게’
여행스케치의 ‘옛 친구에게’
  • 김성숙 전주MBC 구성작가
  • 승인 2020.04.21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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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곡의 노래는 엽서 같아서]<7>
윤성이와 나

 그러고 보니 그의 주장대로 그는 더스틴 호프만을 닮았다. 작달막한 키와 크고 둥근 코가 그랬다. 그런데 그의 별명은 ‘둘리’였다. 그 즈음의 나는 한 뼘은 족히 되는 통굽 구두를 즐겨 신었는데 신발 위에 올라서면 도도한 표정으로 낡은 슬레이트 지붕 같은 그의 정수리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남자여서 나의 대리 출석을 해줄 수 없는 걸 미안해했다. 대신 수업시간에 내가 보이지 않으면 “지금 오고 있는 중인데, 귀걸이 한 짝을 잃어버렸대요!”와 같은 시답잖은 핑계를 대주곤 했다. 공부를 그리 썩 잘 하는 편은 아니어서, 나는 무수한 지각과 결석에도 불구하고 결코 그의 노트를 빌리지 않았다. 운동을 잘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단과 체육대회 때면 그는 운동장보다 우리와 같이 응원석에 앉아 있곤 했다. 가끔 노을이 질 무렵 농구장에서 동기들과 어우러져 뛰는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발걸음을 멈출만한 멋진 슛 하나 본 기억이 없다.

 대신 그에게는 이 모든 단점을 덮고도 남을 멋진 장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의 재력이었다. 그는 호반촌 어느 부잣집의 막내아들이었는데 연로하신 아버지는 그의 대학 입학을 축하하며 예금 통장을 선물했다. 무려 천만 원의 거금이었다. 당시 은행 이자는 10%를 훌쩍 넘었다. 그의 통장에 이자가 들어오는 날이면 우리는 수업 끝나기가 무섭게 학교 앞 ‘마이호프’로 달려갔다. 그런 날이면 500cc 한 잔에 기본 안주로 별 볼 일 없는 수다를 축내지 않아도 되었다. 호기롭게 1700cc 짜리 피처 잔을 한 사람 앞에 하나씩 주문해놓고는 한 번에 쉬지 않고 다 마시기, 빈 잔 쌓기 같은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또 그는 ‘대학분식’에 가서 우리가 외상으로 그어놓은 라면 값을 대신 계산하기도 하고, ‘까치 섬의 아기 꽃게’에서 여자 동기들이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 위층 당구장에서 짜장면 내기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부잣집 아들답게 그의 취미는 사진 찍기였다. 교정에 벚꽃이 흐드러진 어느 날, 그는 바주카포 같은 카메라를 목에 걸고 나타났다. 인문대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보이는 족족 친구들을 찍어주더니 다음날 아예 동물원으로 소풍을 가자고 우리를 꼬드겼다. 그때 내가 서태지에 푹 빠져 벙거지 모자를 즐겨 썼다거나 지현이의 곱슬머리가 심각한 수준이었다거나 은미가 갈매기 눈썹을 멋지게 그렸다거나 또는 종기가 가죽점퍼를 좋아하고 인득이는 언제나 바지 대신 이마에 주름을 잔뜩 잡고 민이의 이마는 시원한 정도였고 현식이는 그때나 지금이나 얼굴이 똑같다는 걸, 그가 남긴 사진을 통해 새삼 확인한다.

  졸업 후 동기들의 연락반장은 과대표였던 현식이가 맡을 줄 알았다. 방학도 있는 녀석이 고3 담임이라며 몇 차례 게으름을 피우자 자기 사업을 하는 덕에 상대적으로 시간이 여유로웠던 그가 모임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국문과 출신으로 학원 강사를 하다가 뒤늦게 악기를 배워 시향 단원이 된 친구의 변신도, 결혼 후 임용고시에 합격해 멀리서 교단에 선 친구의 집념도, 나이 쉰을 바라보며 결혼을 해 아기 아빠가 된 친구의 행운도 모두 그를 통해 전해 들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현식이가 동기 단톡방에 글을 올린 것이었다. 출근 준비로 정신없는 시각이었다. ‘동기들아! 이른 아침부터 너무 슬픈 소식을’ … 미리보기로 언뜻 보고는 속으로 투덜댔다. 칫! 방학에는 한 번 보자더니, 또 명절 전에 보자더니 미루고 또 미루고 미루다가 어디로 발령이 나서 못 보게 되었다는 핑계를 대려나! 당분간은 나도 바쁠 예정이다! 내키지 않는 손길로 톡방을 열어보고는 ‘죽고 싶지 않으면 똑바로 말해!’라고 답하려다 그 말이 섬뜩해 교과서체로 울었다. ‘뭐야! 농담이 너무 심하잖아!’

  시답잖은 농담처럼 그가 떠나고 장례식 날 억수같이 비가 퍼부었다.

 “서로를 위한 길이라 말하며 나만을 위한 길을 떠난 거야. 지난 내 어리석음 이젠 후회해. 하지만 너는 지금 어디에.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엔 난 널 위해 기도해. 아직도 나를 기억한다면 날 용서해주오.”

  윤성아, 우리 기억 속에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김성숙
김성숙

 글 = 김성숙

 

 ◆김성숙

 전주MBC 구성작가, 다큐멘터리스트, 전북작가회의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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