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의 정치학
감염병의 정치학
  • 채수찬
  • 승인 2020.04.13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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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되고 있는 감염병 위기는 지구상 많은 나라 국민과 지도자들의 위기대응 능력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앞으로 각 나라 정치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일반적으로 보면 위기상황은 집권자에게 유리하다. 정쟁을 뒤로하고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합하는 집단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위기대응을 잘한 나라에서는 지도자의 위상이 올라간다. 반면 위기대응이 현저히 잘못된 나라들에서는 집권자들이 정치적으로 수세에 몰리고 심한 경우에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

 많은 나라들이 감염병 위기에 속수무책이다. 한국과 독일 정도가 이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두 나라에서는 의료인력, 의료시설 등 자원이 어느 정도 확보되어 있고, 의료시스템과 사회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우왕좌왕하지 않고 전문가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상황파악과 정책결정을 해나가는 사회적 의사결정 시스템이 위기대응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정부와 국민을 움직이는 넓은 의미의 정치체제가 제 구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앞선 나라인 미국도, 영국,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서유럽의 선진국들도,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의 강대국들도 방역자원의 한계, 방역시스템의 한계를 보이고 있고, 잘못된 의사결정과 정책대응으로 국민을 고생시키고 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실리추구에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진검승부라 할 수 있는 위기대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있을 가을 선거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에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외교와 경제정책에서 보인 문제점들에도, 위기상황에서 나라를 안정적으로 이끈 지도자로 평가되어 정치적 기반이 단단해질 것이다.

  지난번 금융위기가 세계화 이후 최초의 글로벌 금융위기라면, 이번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세계화 이후 최초의 글로벌 감염병 위기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태는 각국의 위기대응 역량의 한계를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세계를 다스리는 의사결정 구조의 한계를 보여줬다. 세계보건기구나 UN과 같은 국제기구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현실은 세계화되어 있는데 의식과 시스템은 세계화가 되어 있지 않다. 정보의 흐름이 중요한 이 시기에 온 세계 사람들이 의지할 만한 글로벌 매체도 드물다. 필자는 요즘 각국의 언론들을 한 바퀴 도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사실보도는 비슷하나 관점들이 서로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필자가 세계의 언론들을 한 바퀴씩 도는 더 중요한 이유는 뭔가 이 위기해결에 도움될 방안들이 어디 없나 찾아보기 위해서다, 유감스럽게도 눈에 뜨이는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각 분야의 학자들도 각계의 전문가들도 각자 자기가 하는 일의 중요성만 얘기할 뿐 설득력 있는 해법들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확실히 도움이 되는 것은 행동뿐이다.

 경제학자인 필자로서는 시장을 작동시켜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격리되고 단절된 수요와 공급이 만나게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세계 각국에서 한국의 방역물품에 대한 구매요청이 쇄도하고 있으나 이를 충족시킬 여력이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한국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여력이 생겨 수출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세계를 이끄는 나라가 되려면 다른 나라가 어려울 때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

 세계각지에서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재난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지도자가 정치적인 유불리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이번 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사회시스템과 정치체제에 대해 많은 성찰을 하게 될 것이다.

 채수찬<경제학자/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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