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는 사람에게 주는 희망
길을 묻는 사람에게 주는 희망
  • 김동근
  • 승인 2020.04.09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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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외딴 산골마을에는 늦은 오후나 밤에 산길을 통해 다른 지역으로 가려고 길을 묻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 있다. 먼저 앞서간 사람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길을 가다보면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두려움에 떨며 어두운 밤길을 혼자 걷는 사람에게 희망을 불어넣는 말이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 할 것 없이 CEO의 역할은 힘들다. 이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많게는 수십만 명에서부터 적게는 몇 명까지의 직원의 생계를 책임져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터놓고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이 마주하는 경제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대처를 한다는 것이 아무도 가보지 않는 길과 같아서 어렵다.

 전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 19의 경우도 그렇다. 코로나 19는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감염병이다. 이로 인해 세계경제는 침체에 빠져들기 시작하였고 사회도 급속도로 붕괴하고 있다는 위험신호가 여러 곳에서 켜지고 있다. 세계 각국은 코로나 19를 극복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코로나 19를 대처하는 방식은 국가마다 천차만별이다. 중국은 강제적으로 국가와 지역뿐만 가정까지 봉쇄하여 코로나 19를 극복하고 있다. 효과가 가장 좋을 수 있지만 국가간의 이동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국가간 마찰이 발생하고 국가 경제가 셧다운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대만이나 싱가포르는 중국처럼 전방위적인 봉쇄는 아니지만, 국경을 봉쇄하여 코로나 19를 극복하였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국가와 지역은 물론 가정도 봉쇄하지 않으면서도 사전적 진단검사와 확진환자의 동선 공개, 사회적 거리두기 등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코로나 19를 극복하고 있다.

 코로나 19가 발병하던 초기에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지금은 미국을 비롯하여 유럽, 남미 등 세계 각국이 우리나라의 방식을 따라 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각국에 코로나 19를 극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중국의 문학가이자 사상가인 루쉰(魯迅)은 자신의 단편소설 「고향」에서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길을 걷는다. 때론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 위를 걷게 되고, 눈 위에 찍힌 내 발자국의 흔적을 보고 많은 사람이 걷다보면 어느덧 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길은 정말 내가 만든 길일까? 이곳으로 아무도 가지 않았을까?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란 없다. 그저 자신이 처음 가는 길일뿐이다. 살다보면 태풍이나 눈보라가 몰아쳐도 반드시 길을 가야만 하는 때가 있다. 길을 가다보면 험한 길이 나올 수도 있고, 편안한 길이 나올 수도 있지만, 처음 접하는 길은 우리를 항상 두렵고 긴장하게 한다. 그래서 좌우를 두리번거리게 되고 먼저 이 길을 가본 사람이 있었는지 묻게 된다. 길동무라도 있다면 그들에게 내가 가는 방향이 맞는지, 가다가 여러 갈래 길이 나오면 또 어떤 길을 선택해 가야하는지 그러다 헤매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어 한다.

 지금 나에게 길이 없다고, 길이 안 보인다고 해서 애통해할 필요는 없다. 누구에게나 길은 펼쳐져 있다. 다만 그 길을 가려는 동기와 목적이 달라 안 보일 뿐이다. 길은 가는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 그리고 길을 만들어 가는 방법에 따라 달라진다. 이럴 때 주위 사람이나 길동무의 존재가 빛을 발한다.

 길을 잃어도 사람을 잃지 말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생겨나는 것이 희망이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한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힐 때마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사람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자는 것이다.

 코로나 19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의 피로감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퇴근 후 술집에 들르거나 친교를 위한 모임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지금 선방하고 있는 코로나 19가 언제 다시 폭발적으로 늘어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럴 때 사람이 길이요,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생각해 보자.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는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의미가 있다. 사람들을 위해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서로 배려하고 존중해 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것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김동근<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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