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경 쓰는 기술 ‘사경장’ 첫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된 김경호 씨
불경 쓰는 기술 ‘사경장’ 첫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된 김경호 씨
  • 김미진 기자
  • 승인 2020.04.02 18:0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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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제 출신의 외길 김경호(57)씨가 ‘사경장(寫經匠)’ 첫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가 된다.

 1일 문화재청은 ‘사경장’을 국가무형문화재로 종목지정하고, 첫 보유자로 김 씨를 인정 예고 했다.

 이번에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한 ‘사경장’은 불경(佛經)을 쓰는 사경(寫經) 기술을 가진 장인을 말한다.

 우리나라 사경의 역사는 삼국 시대 전래된 불교의 경전을 세상에 널리 보급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했는데, 8세기 중엽 목판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점차 스스로 공덕(功德)을 쌓는 의미로 변화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경 유물은 통일신라 시대 때(745~755년) 제작된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국보 제196호)’이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국교가 되면서 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복을 기원하기 위한 사경이 전성기를 맞이했다.

 ‘고려사(高麗史)’ 등에 따르면 국가에서 사경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기관을 운영, 국가 최고의 역량을 동원한 당대 문화의 집약물이었다.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국보 제235호)’ 등 금자·은자(銀字) 형식의 사경이 많이 제작됐다.

 조선 시대에는 숭유억불(崇儒抑佛)의 기조가 유지되면서 쇠퇴했으나 일부 왕실과 사찰에 의해서 명맥은 유지됐다.

 이번에 첫 ‘사경장’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김경호씨는 스스로 지은 그의 아호 ‘외길’처럼 40여 년간 사경 작업에만 매달려온 장인이다.

 사실, 사경 제작에는 서예, 한문, 불교 교리, 회화 등에 대한 숙련된 기능은 물론이고, 경전의 오자·탈자가 없어야기 때문에 고도의 집중력과 장기간의 제작시간이 필요하다.

 김제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김제향교 전교였던 아버지 밑에서 한학과 서예를 배웠다. 사경을 접한 것은 중학교 2~3학년 때부터다. 짧은 불경, 경구 등을 사경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방학 때면 늘 금산사를 찾아 공부하고 생활해 가장 정이 들었던 사찰로 기억한다. 전북대 졸업 후 취직을 위해 서울에 자리잡았지만, 성인이 되어 사경에 대해 더욱 많은 연구 활동을 펼쳤다.

김씨는 오랜 기간 문헌과 유물을 통해 사경의 재료, 형식, 내용을 연구하고 이를 기술로 승화시켜 1997년 조계종에서 개최한 ‘제1회 불교사경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2010년 ‘대한민국 전통사경기능전승자(고용노동부지정, 제2010-5호)’로 선정됐다.

2002년부터 한국사경연구회를 조직해 제자와 동호인들을 다수 배출했고, 2013년에는 한국전통사경연구원을 열고 다년간 연구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문 서적을 저술하는 등 사경의 전승을 위해 활동했다. 김씨는 전통 사경체(寫經體)를 능숙하게 재현할 뿐만 아니라 변상도 등 그림의 필치가 세밀하고 유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화재청은 김씨에 대해 30일까지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무형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국가무형문화재 지정과 보유자로 인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김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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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밝은 사람 2020-07-06 13:42:15
중요무형문화재 사경장 선정 심사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뉴스에 나왔는데 ,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진실을 밝혀서 정당성을 입증해야 불교계에 누가되지 않을 것이다.
불경을 사경하는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가 최초로 선정된것은 축하할 일이지만 그 선정과정에서 형평성에 논란이 있었다면 나중에 두고두고 불교계에 오명으로 남을 수 있으니 진실을 먼저 밝혀야 될 것이다.

http://www.newscore.kr/13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