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사회
  • 장상록
  • 승인 2020.03.0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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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인 조카 정원이는 태어나서 진학하기 전까지 외가에서 자랐다. 어느 새벽 열로 불덩이가 된 녀석을 안고 전주 예수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가와사키병이라고 했다. 난 지금도 녀석을 만나면 유쾌하게 말한다. “이 녀석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오버에 넌센스임을 어찌 모르겠는가. 고맙게도 정원이는 내 그런 너스레를 아직까지 이해해준다.

 지난 설이었다. 세배를 마친 정원이가 내게 갑자기 이렇게 말한다. “삼촌은 거울 보면 깜짝 놀라지 않아. 어떻게 그렇게 못생겼어.” 그야말로 팩폭인가?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녀석이 귀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삼촌이 그렇게 못생겼냐?”라고 묻자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한다. 그날 난 정원이를 통해 나 자신을 그렇게 객관화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것은 언젠가 내 차속에서 했던 정원이의 질문에 대한 옹색한 답을 통해 얻었던 기억과도 같다. 그날 녀석은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에 나오는 ‘난 슬퍼도 행복합니다’ 부분이 나오자 내게 이렇게 물었다. “삼촌, 왜 슬픈데 행복해?” 난 그날 정원이에게 뭐라 답했던가.

  기억이 흐릿하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내가 정원이에게 납득할 만한 답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후로도 정원이는 만날 때 마다 내게 배움의 대상을 제공한다.

 잠시 정원이를 통해 초등학교 4학년의 역사관을 알아보려 한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얘기다.

 정원이는 외할아버지 생신을 축하하러 모인 가족 모임에서 외할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할머니, 이승만이 우리나라를 갈라놨어요.” 솔직하고 맑은 정원이는 이승만에 대해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공부한 것일까. 정원이가 던진 수많은 말들처럼 이번에도 내게 생각거리를 안겨준 말이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너무도 다른 하나가 있다. 바로 섬뜩함이다.

  그것은 결코 솔직함이나 맑음으로 포장할 수 없다. 명백한 아동학대이자 무책임의 극치다.

 도대체 누가 정원이에게 이런 역사의식을 빙자한 폭력을 행사했단 말인가.

 이승만에 대한 평가는 다양할 수 있고 독립운동과 건국, 분단은 물론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행태 모두가 그 대상이 된다. 나는 정원이가 대학에 가서 많은 책을 읽고 다양한 의견을 듣는 과정을 통해 얻게 될 그의 판단을 존중할 준비가 되어있다.

무지보다 더한 악과 폭력은 편향된 앎이다. 한 권의 책만 읽고 그것이 모든 진리인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에게 과연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진리에 대한 탐구 이전에 사회성의 문제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얼마나 지엽적인 것이고 자신의 사고가 타인의 관용 속에 존재할 수 있는 퍼즐의 일부분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가 말하는 정의는 그 자체로 최악의 폭력이다. 이것은 정원이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순간 고향집에서 TV소리가 자취를 감췄다. 주무실 때조차 TV를 켜놓던 아버지, 어머니께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그것은 신문 보시기를 좋아하셨던 아버지께서 TV로 관심을 옮겨 가던 순간과 너무도 닮았다. 이제 두 분은 유튜브를 통해 모든 궁금함을 해결하고 계신다.

  그것은 과연 내 아버지와 어머니만의 변화일까. 언제부터인가 신문의 다양한 사설과 칼럼이 선사했던 사고의 깊이와 다양함에 대한 관용은 TV를 통해 급격히 축소되어 나갔다.

  그런데 그나마 남아있던 조그마한 여지도 이제 사라져가고 있다. 이제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취사선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거기엔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관용의 노력이 없다.

 열린사회가 되기 위한 기본전제는 경청에 있다. 내 말과 주장을 상대방이 경청해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과연 사회를 위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나 역시 상대방의 말과 주장을 경청할 의무가 있음을 반증하고 있다. 그런 점에 가장 부합하는 매체가 신문이다.

  신문엔 다양함과 관용 그리고 사고와 행위의 과열을 방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능이 있다.

  정원이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삼촌에겐 설민석 같은 재미가 없어.”

  나는 정원이에게 계속 배우고 있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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