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생과 매점매석’
‘허생과 매점매석’
  • 김성철
  • 승인 2020.02.06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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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은 연암의 실학사상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주인공은 남산 아래 묵적골에서 오막살이를 하는 가난한 선비 허생. 가난한 살림에 일은 하지 않고 십년간 책만 보던 허생은 “과거를 볼 것도 아닌데 책은 왜 보냐”며 화를 내는 아내의 말에 책을 덮고 한양의 부자 변씨를 찾아간다.

 초라한 행색의 허생이었지만 그는 변씨에게 대뜸 1만냥을 빌려 달라며 당당하게 말하고, 또 변씨는 그러한 허생에게 아무말 없이 1만냥을 빌려준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말도 없이 사라진 허생과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담보로 1만냥을 빌려준 변씨. 지금의 가치로 1만냥은 10억원 가량의 돈이다. 그런 큰돈을 아무 대가 없이 턱 내어 준 변씨에게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 사람을 보니 빚지러 온 이의 구걸하는 눈빛은 아니었소. 자신의 비루한 행색이나 처지를 전혀 창피해 하지도 않고 아쉬울 것 없다는 태도, 그 당당한 처세가 곧 신용일 터인데 안주면 모를까 뭣 하러 이름까지 물어 봅니까”라고 말이다.

 낡은 갓을 쓰고 허름한 두루마기를 입었을지언정 허생의 당당함이 오히려 변씨의 신뢰를 얻은 것이다. 이는 오늘날 성장 잠재력이 있는 기업이나, 상환의지가 있는 고객에게 기회를 주는 신용 대출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신용으로 빌린 돈 1만냥으로 허생은 갖가지 과일을 모두 사들였고 그러자 한양에서는 과일이 없어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때 허생은 갖고 있던 과일을 시장에 내다 팔면서 큰돈을 벌게 된다.

 허생은 이렇게 번 돈으로 다시 말총(조선시대 선비들의 상투머리에 쓰는 망건의 재료)을 모두 사들인 후 말총이 없어 망건을 만들지 못해 상투머리를 하지 못하는 선비들에게 비싼 값으로 말총을 팔아 또다시 큰돈을 번다.

 부족한 물량에 가격은 계속 치솟고 그 타이밍을 틈타 본래 가격의 10배가 넘는 값으로 판매한 것이다. 바로 매점매석이다.

 그러나 오늘날 허생의 방식으로 장사를 했다간 범법자가 되기 십상이다. 전국의 과일과 말총을 모두 사들이는 행위 자체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제3조의 2에 시장 지배적 지위의 남용’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기준에 따르면 허생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시정조치를 받고 과징금을 내야 한다.

 요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감염 확산 방지와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이때에 매점매석으로 보건용 마스크의 가격을 올려 폭리를 취하는 업체들로 인해 온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하루아침에 5배에서 10배가 넘게 가격이 오르고, 이미 주문한 마스크를 업체가 일방적으로 주문을 취소했다는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이에 정부는 ‘물건안정에 관한 법률’에 따라 ‘마스크 및 손소독제 매점매석행위 금지고시’를 5일 공포했다. 이를 어기면 2년 이하 징역,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훗날 허생이 변씨에게 빌린 돈을 갚으러 왔을 때 변씨가 허생에게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었느냐고 묻는다. 허생은 “여러 가지 중에 어떤 하나를 슬그머니 독점해 버린다면 이는 백성을 못살게 구는 방법”이라며 “나랏일을 맡은 이들이 행여 이 방법을 쓰는 자가 있다면 반드시 그 나라를 병들게 하고 말 것”이라고 말한다. 즉 허생도 매점매석이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양반의 무능함과 조선시대 현실을 풍자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였을 뿐, 그나마 허생은 벌어들인 돈을 가난한 백성의 구제에 썼다.

 국민의 건강을 볼모로 하는 매점매석은 엄연한 범죄행위다. 자유로운 영리활동을 최대한 보장하는 자유시장경제의 본질을 흐리는 이러한 매점매석은 그 어떤 명분도 없는 명백한 범죄로 강력한 규제와 처벌이 요구된다. 이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와 함께 모두가 하나로 힘을 모아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현명하게 이겨냈으면 한다.

 김성철<전북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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