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도처가 비경이요, 곳곳이 정서 순화의 고장
완주 도처가 비경이요, 곳곳이 정서 순화의 고장
  • 백봉기
  • 승인 2020.02.06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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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특집> 7.
일문9의사 사적비
일문9의사 사적비

 완주군은 전주시와 접경하면서도 전주에 부속되지 않고 오히려 그 기상이 돌올하다. 노령산맥의 지맥을 얻어 굽이굽이 산령 휘달리니 승경이 바로 완주일레라. 비봉, 화산, 운주, 고산 등 그 험하기로 개발이 더디었는데, 이는 오히려 힐링의 요람으로 인구가 늘어나는 중이다.

 이름 붙이되 완전한 고을 완주인 바, 이미 예견하여 미래를 점쳐 둔 것이다. 산악을 많이 끼고 도시에 접경하니 타 지역 사람들도 이 고장에 많이 쉬어 간다. 그 중에서 모악산은 그대로 모악으로 다 포용하고 모두 품어 인자요산의 그 정기로 우뚝하다. 또한 대둔산은 그 수려함으로 한국 명산으로 손꼽히는 산이다. 그 정기로 독립운동 기운을 배가 시킨다.

 특히 완주의 일문 구의사 이야기는 빛이 지지 않는 애국혼의 상징이다. 산이 높고 물이 깊으니 문천 무만, 문사가 천명 나고 무인이 만명 난다는 뜻일레라. 그래서인지 의로운 의진이 창의의 깃발을 먼저 들었고 저리 심산유곡에서 시대를 밝히는 문사들이 창만하였으니 이 고을을 충절과 문향의 고을이라 일컬을 만하였다.

 궁벽한 고장이라 생계도 어려운 터에 어찌 창의의 뜻을 세웠을꼬. 꽉 막힌 산천 굽이굽이 협곡인데 어찌 문화예술의 명사들이 줄곧 대를 이었을꼬, 참으로 기이한 고을이다.

 9의사 중 유치복 선생은 을사, 정미 조약 후 의병활동에 투신 유지명 의진에 몸담아 동지 3인과 함께 우북면 장암에서 이화순으로부터 군자금 30원을 조달 받았고 미륵면(미력면) 도내리 최순표에게서 역시 15전을 받았으며 전라·충청 일원에서 일군과 교전 전과를 크게 올렸다. 1910년에 결국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총살형에 처해 장렬히 순국하였다.

 유태석 열사는 완주 비봉면 유씨 일문 청년 9인은 일제 야욕 분쇄를 결의하고 유명석 유준석 등과 의진을 결성하고 익산 일대에서 군자금을 마련하고, 여산면 원수리 한흥수 집에서, 이봉승 집에서, 각 각 군자금을 모금했다. 그 후 일경에 체포되어 15년 형의 옥고를 치렀다.

 유영석 선생은 1907년 유현석 등 7인과 더불어 익산 여산면 원수리 노상에서 한흥수 집과 이봉승 집에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그 후 일경에 체포되어 10년 형의 옥고를 치렀다.

 유명석 공은 1907년 유현석 등 7인과 더불어 원수리에서 한흥수, 이봉승 집에서 군자금을 모았다. 1917년 체포되어 15년 형의 옥고를 치렀다.

 유준석 선생은 유현석 등 7인이 원수리 노상에서 한흥수, 이봉승등에게서 군자금을 모금하였다. 후에 체포되어 15년 형의 옥고를 치렀다.

 유현석 열사는 유명석 등 9인의 의병이 되어 활약했으며, 원수리 노상에서 한흥수, 이봉승 등에게서 군자금을 모았다. 그 후 은신 중에 체포되어 12년 형의 옥고를 치렀다.

 유연청 선생은 1907년 유현석 등 7인과 더불어 의병이 되었다. 그 후 익산 군내에서 군자금을 모았고 원수리 노상에서 한흥수, 이봉승 등에게서 군자금을 모았다. 그 후 은신 중에 일경에 체포되어 12년 형의 옥고를 치렀다.

  유연풍 열사는 1907년 유현석 등 7인과 더불어 노상에서 한 흥수 이봉승 등에게서 군자금을 모았다. 그 후 은신 중에 체포되어 12년의 옥고를 치렀다.

  유연봉 선생은 1906년 일문 9인의 의병으로 활약했으며 원수리 노상에서 한흥수, 이봉승에게서 군자금을 모았다. 그 후 일경에 체포되어 12년의 옥고를 치렀다.

 백봉기 수필가(전북예총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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