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 콤플렉스 벗어나기
약소국 콤플렉스 벗어나기
  • 장상록
  • 승인 2020.01.14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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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화주의(中華主義)는 역병과 같은 이데올로기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화이(華夷)라는 개념을 수반한다.

  오랑캐,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오만과 혐오의 결정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이(夷)에 속하는 조선인이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망령이 되어 나타난다.

  오랜 시간 오랑캐로 불렸던 그들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을까. 잠시 그들에게 다가가 보자.

  귀주(龜州)에서 고려군에게 대패한 후 거란이 남긴 역사적 기록을 찾아봤다. 오랑캐(?)라는 그들은 우리와 얼마나 다른 사람들이었을까. 그해 거란 조정에서는 고려에서 전사한 장교의 처와 자제들을 조사한다.

  그들 역시 전몰장병에 대한 예우와 남겨진 가족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더 있다. 귀주대첩이 있기 5년 전 고려에 사신으로 갔던 야율자충(耶律資忠) 얘기다.

 고려는 그를 억류하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고려에서 보여준 충의는 삼학사(三學士)와 견줘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야율자충은 마침내 귀주대첩 다음 해인 1020년 거란에 송환된다.

 요(遼)가 중원의 송(宋)을 굴복시킨 것을 야만인이 문명인을 공격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이것이야말로 넌센스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송의 정신승리에 더해 한국사를 모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인 의식 속엔 여전히 ‘약소국 콤플렉스’가 자리하고 있다. 그 중심에 중화주의가 자리한다.

  조선은 몰라도 고려나 대한민국은 약소국이 아니다. 만일 누군가가 대한민국을 약소국이라 생각한다면, 귀주대첩에 참여했던 고려군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후손들이여 당당하게 나서라. 그대들은 강인한 고려의 후손이다.”

  고려는 분명 조선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조선과 비교해 고려의 가장 큰 특징은 대외관계에서 자주적이고 강인했다는 것이다. 개국 초부터 시작된 고려에 대한 외침은 왕조가 멸망하는 순간까지 계속된다.

  거란, 여진, 몽골 그리고 황건적과 왜구까지 끊임없이 고려를 침략했지만 고려인은 강인하게 저항했다. 그 중에서도 귀주대첩(구주대첩)은 백미였다. 거란은 중원의 송을 굴복시키고 여진족을 노예로 만들어버린 최강자였다. 그들은 고려에게도 굴복을 요구했지만 고려는 수양제와 당태종을 물리친 저력을 가진 나라였다. 왕도 달랐다. 고려 현종(顯宗)은 조선 선조(宣祖)나 인조(仁祖)와 다른 길을 갔다.

  귀주대첩 당시 현종은 항복이나 몽진(蒙塵)이 아니라 백성과 함께 최후까지 결전의 의지를 다졌다.

  또 하나 귀주대첩은 기존 한국사에서 보여준 전투에서의 승리 방정식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산성에서의 방어전이나 매복에 의한 기습으로 승리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흡사 한니발이 로마군을 궤멸시킨 칸나에 전투와 닮았다. 한국사에서 이런 형태의 완벽한 승리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고려의 국제적 위상은 굳건해진다. 고려는 동북아의 강자로 공인받게 되고 향후 100년간의 평화체제를 만드는 주체가 된다.

  그것은 구걸하는 평화가 아니라 당당하게 쟁취한 평화였다.

 오늘 우리는 평화를 얘기한다. 과연 그 평화는 어떠한 평화를 말함인가.

  역사는 말하고 있다. 돈으로 사고, 굽신 거리며, 정신승리를 통해 평화와 정의를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평화가 아닌 굴종과 신기루만 남는다는 사실을.

  송나라가 그랬다. 하지만 고려는 피를 통해 자유와 평화를 구현했다. 누가 고려를 약소국이라 말하는가.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것은 결코 살아있는 우리만의 힘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거기엔 선열들의 의지와 정신이 함께하고 있다. 아직도 약소국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누군가가 있다면 귀주에서 영웅적으로 참전한 고려군을 떠올려보기 바란다.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에게 말했다. “한국은 약소국이 아니다. 한국이 유럽에 위치한다면 과연 몇 나라나 한국을 능가할 수 있겠는가.” 화(華)는 없다. 그리고 이(夷)도 없다. 비굴함보다는 때로 오만함이 필요하다.

 장상록 / 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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