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접받지도 못한 세대의 한탄
대접받지도 못한 세대의 한탄
  • 이흥래
  • 승인 2019.12.26 17: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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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리스마스가 지났지만 거리에는 여전히 반짝거리는 크리스마스트리가 가득 내걸려 있고, 연말의 다소 들뜬 분위기에 맞는 경쾌한 음악들이 울려퍼지고 있다. 찬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많은 젊은이는 설렘과 희망 속에서 거리를 부지런히 오가고 있다. 젊음이 주는 기대감이 이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 연배쯤 되는 이들에게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는 그저 무덤덤한 일상의 연속일 뿐이다. 아니 오히려 또 한 해가 덧없이 가는 아쉬움과 회한이 가득히 밀려오는 시기일 뿐이다. 어느 철학자는 노년에도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노력하다 보니 60대쯤이 가장 자유롭고 홀가분한 시대였다고 회고했다지만, 거처를 정하지 못한 많은 수많은 젊은 노인들에게 연말연시는 우울함이 더 짙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소득보다도 빚이 많은 그래서 울고 싶은 장·노년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흥청거리는 연말연시의 뒷골목에 가득히 넘쳐나고 있다. 더구나 이들 세대는 밀레니얼 세대 등 신세대들과의 정보화 경쟁에서 밀리는 데 따른 단절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은행업무의 80%쯤은 전화로 해결할 수 있다지만 거기에 익숙지도 못하고 택시조차 부르지 못하는 이른바 폰맹, 컴맹들이 늘어나면서 이러다가 굶어 죽기 딱 맞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특히 가장 두려운 것은 과거와 달리 장수시대로 접어들면서 사회적으로 대접받지도 못하고 다음 세대들에게 밀려나는 게 아니냐는 아쉬움이다. 나 역시도 그렇지만 우리 세대가 받는 가장 많은 질문은 ‘요즘 뭐하고 지내느냐’는 것이다. 딱히 출근할 곳도, 소일거리도 변변찮은 우리 또래들은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잠시 잊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되돌아보게 된다. 며칠 전 모임에서 한 선배가 요즘에는 왜 전화도 없느냐고 물었을 때, 백수가 현직에 전화하려면 몇 번쯤 생각해본다는 또 다른 선배의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너무 엄살이라고 타박할 사람도 있겠지만 이게 60대를 막 넘어선 동네백수, 이른바 동백들의 일반적인 심정이 아닐까. 하지만 지금 막 비상하는 젊은이들이나 소외감에 한숨 쉬는 우리 또래들이나 모두가 한 살씩 더 먹어야 하는 시기가 코앞이다. 올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던가. 앞으로 다가올 시대는 또 얼마나 많은 변화를 요구할까라는 조바심 속에서 한해가 가고 있다.

 매년 한해를 마감할 때면 신문마다 수많은 기관, 단체들의 인사동정이 가득히 실려있다. 어느 기관에서는 누가 기관장에 올랐고 또 어느 대기업에서는 누가 CEO에 올랐다는 기사를 보면서 아는 이름이라도 보이면 그와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고 또 세월이 흐르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젊었을 때부터 제법 똑똑했던 친구가 어느 위치에 올랐으면 그의 발탁을 기뻐하기도 하지만, 얼마 전에 입성했던 친구가 불과 얼마만에 자리를 내놓게 됐다는 사실을 알게 될때면 나도 모르게 속에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곤 한다. 같은 세대로서 느껴왔던 연대감이 무너지는 아쉬움 때문이겠지. 그런가 하면 모르는 사람이긴 하지만 유리천정이라는 장벽을 뚫고 불과 30대인 여성들이 대기업 중역진에 올랐다는 기사라도 볼때면 참 대단하다는 느낌과 함께 우리는 왜 요모양 요꼴인가 하는 자조감이 몹시 들기도 한다. 더구나 얼마전 세계적인 뉴스에 올랐던 두 유럽 여성의 등장은 남의 나라 얘기이기는 하지만 세상이 이렇게 빨리 변해도 되나 하는 당혹감마저 들게 했다. 바로 산나 마린 핀란드 총리와 스웨덴의 10대 환경운동가 그레티 툰베리가 그들이다. 요즘 유럽의 정치상황이 신자유주의 성향이 강하고 IT의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미디어 선거의 특성이 강한 결과때문이라고도 하지만, 이제 사회가 이렇게 변하고 있음을 실감시켜준 사례가 아닌가 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변화가 머지않아 닥칠 수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시다시피 산나 마린 총리는 올해 나이 34살로 현직 총리로는 전 세계 최연소 총리이다. 그는 27살이었던 2012년 시의원으로 정계에 진출했는데 불과 7년만에 세계 최고복지국가 중 하나인 핀란드의 신임총리로 선출된 것이다. 도대체 이 젊은 여성이 무슨 재주를 지녔기에 강대국 러시아와 국경을 마주하면서도 명맥을 유지해온 강소국의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정치판이라고 하는 곳이 대부분 나이 지긋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부도옹들이 판치는 곳인데 요즘 세계적으로 부쩍 젊은 정치인들이 대거 등장하다보니 참 세상이 많이도 변하고 있는데 우린 이제 맥없이 밀려나고 있구나 하는 소외감에 쌓이곤 한다. 더구나 뉴질랜드도 30대 여성총리가 통치하고, 프랑스의 마크롱 대통령도 당선됐을땐 30대였으니 우리 시각에서 바라보면 경천동지라고 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물론 최연소니 하는 단어들이 당사자들의 연륜 부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같은 범생이가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그다지 정치경험도 없는 젊은 여성정치인이 과연 한 나라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다. 더구나 산나 마린 총리는 취임 직후 19개 장직 가운데 12개를 30대 3명이 포함된 여성들로 임명했다고 하니 더욱 그러했다. 그도 그럴것이 우리는 예로부터 소년 등과를 가장 두려워한데다 70여년의 기다림끝에 천하를 평정했던 강태공의 경륜을 높이 받들어온 터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 역시 올해 나이 16살에 불과한 10대 여성 환경운동가이다. 툰베리는 지난 9월 영국의 한 항구에서 화장실도 없는 저탄소 소형요트를 타고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기후행동 정상회의에 참석해 온실가스 저감정책에 나서지 않는 각국 정상들을 향해 하루빨리 결단하라는 사자후를 터트렸던 당찬 소녀이다. 이같은 툰베리의 영향을 받아 올해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청소년들이 기후변화 시위에 참여했다고 한다. 툰베리는 타임지가 1927년부터 선정한 올해의 인물 가운데 최연소라고 한다. 10대 어린 소녀도 이렇게 세상을 주도해 나가고 있는데 이런 젊음을 바라보면서 마냥 웃고만 있을 수 없는 우리네 처지가 씁쓸해진다.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우리 세대들에겐 지금까지 어느 해도 다사다난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올해 역시 유난히도 시끌벅적스러웠던 한해가 아니었나 싶다. 정치판은 잘 아다시피 가장 악질적이고 저급한 반목과 파당행위가 판을 쳤고, 거리에는 대립과 증오의 물결이 가득 채워졌었다. 한 정치인의 입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인간성 말살 정도의 잔인한 이전투구와 이를 둘러싼 사법개혁의 험난한 파도는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채 고비를 맞고 있다. 오죽했으면 교수들이 올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이조를 뽑았겠는가. 또 대외적으로도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4대 강국들의 각축과 남북한을 향한 각국의 안면몰수식 후려치기는 여전히 시계제로의 험난한 국제정세를 보여주고 있고, 불매운동과 치솟는 부동산 가격속에서 서민들의 주름살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내년 경자년에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대립은 더욱 치열해질듯 하고, 대외정세 역시 녹록지않은 한 해가 될 듯하다. 우리 세대가 맞는 두번째 경자년에는 우리 세대쯤이 위아래 세대들을 아우르고 연결해 이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가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아직도 젊고, 능력있는 세대이기에 말이다.

 이흥래<前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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